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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02. 2023

선생님들의 모임 진짜로 하기

어제 오후에 소위

 'GLOBAL 문화이해 독서 토론 동아리'

5월 모임을 가졌다. 

4월 초 시교육청에서 인문독서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선생님들의 독서토론 동아리를 공모했다. 

교내 선생님들 7명을 꼬셔서 

계획서를 냈는데 붙었다.

 적은 돈이지만 예산을 지원받고 

운영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꽤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다. 

운영방식을 고민하다가 

각자 돌아가며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나누기를 기본으로 하고, 

한 학기에 한 권 정도 

같이 읽을 책을 정해 읽기로 했다. 


4월에는 김 선생님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글 )를 소개했다. 

유명한 책이고, 

나도 은둔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몇 번 

시도했지만, 

워낙 나른한 문체에 밋밋한 내용이라 

번번이 실패했던 책이서 반가웠다. 


김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막상 꿈에 그리던 교대를 진학해서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 길이 나의 길인가를 방황했던 

그때 만났던 책이었다. 

교육과 관련 있는 내용의 책은 아니지만, 

주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저자들이 

비주류의 삶을 대안적으로 선택하는, 

인간의 주체성이 와닿은 듯했다. 


특히 마지막 스코트 니어링이 

100세가 되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며 이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종교에서 바라보는 죽음의 문제,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인 연명치료, 

아직 합의가 되지 않는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라 죽음은 전적으로 

신의 영역이라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결론은? 

물론 열린 결말이다. 


누가 그 문제에 대해 

이것이 답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다만 평소에 절대 할 일없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어 이야기해 보는 것. 

그것이 이 모임의 역할이며, 그것이 다다. 


책에 나오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샌가 내 생각도 다시 정돈된다. 

그야말로 정 반 합의 과정이다. 


어제 5월 모임에서는 내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글 )과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 (최순나 글 )을 소개했다. 

역시 좋은 시간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고, 

따뜻한 분위기에 충만함이 느껴졌다. 


사람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챗GPT가 아무리 심오한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준다 해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마치 종합 예술적과 같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각자 서로 다른 일로

몹시 바쁜 학교 내에서 

모임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것은 

꽤 귀찮다. 

그래서 소수의 선생님들만 

계획서를 내고 시도한다. 

대부분 하던 사람이 계속 한다.


 나는 계속하는 편이다. 

내가 특별히 봉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수석교사의 직무상 이런 모임을 

꾸준히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겐 일이다. 

하루 하루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 속에서 

이것도 일이기에 

부끄럽지만, 많은 경우 가짜로 했다. 


'선생님들 바쁘시죠? 

이번 모임은 활동 결과지로 대신할게요~

다음 모임에 만나요.'

라는 내부 메시지를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가짜로 대치되는 일이 발생했고, 

어느 순간 '귀찮다'가 '바쁘다'는 말속에 숨어서 

나는 공갈빵같이 살고 있었다. 


한 번씩 공갈빵이 푹석 깨지는 순간,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공허한 질문만 

엉뚱한 곳에서 해댔다. 

속이 꽉 찬 찰떡같이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올해 공갈빵을 찰떡으로 바꾸기 위해 

첫 번째로 내가 마음먹은 일은, 

가짜들 중에 몇 개는 진짜로 하기였다. 

모든 것을 진짜로 하는 건 

또 다른 공갈빵을 양산하는 거니까. 


이 모임의 속을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찰떡으로 변해있겠지?


모임을 함께한 사람들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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