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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03. 2023

씹어 먹히는 수업

이번 주 2학년 아이들과는

'봄철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

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봄철 사람들이 하는 일을 지난주에 조사했고,

그 일을 할 때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익히는 공부다.

익히는 방법은 카드놀이다.


교과서 부록에 모두 16장의 도구가 소개되는데

이 도구들은 쓰임새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된다.

즉, 봄나들이할 때 필요한 것,

나무나 꽃을 심을 때 필요한 것,

봄맞이 대청소를 할 때 필요한 것들이다.


16장 중 3장을 손에 쥐고 쓰임새가 같은지 보고

다르다면 그림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내려놓고

새 카드를 가져가서

모두 쓰임새가 같은 카드 3장으로

먼저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할리갈리'나

어른들이 하는 원카 등

카드놀이에서의 기본적인 방법이라

이렇게만 설명해도

대충 머리에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그럴까?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뭔가를 만지고

규칙을 알아야 할 수 있는 놀이가

수업에 포함되어야 하면

익힐 수 있는 시간을

매우 넉넉하게 확보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제 2-1 수업에서 30분 정도

 '봄철 사람들의 생활에 무엇이 필요할까?'

를 질문으로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위에서 말한 카드놀이를 도입했다.

실물화상기를 켜두고,

카드에 나온 이름과 쓰임새를 하나하나 익혔다.

16장을 모두 익히고 난 후,

뜯어서 놀이를 준비했다.


나는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듯이  

놀이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실물화상기로 놀이 장면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었다.


"자, 이제 짝끼리 해봅시다."


말하자마자 역시 두 명의 고객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까만 콩이 생각나는 민재와

별 같은 눈을 가진 다연이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그럴 줄 알았다.'


민재와 다연이는 그래도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들이다.

소극적인 아이들은 카드만 만지작거릴 뿐

몰라도 모른다는 말을 안 한다.

아마  이 외에도 2/3 정도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민재와 다연이는 내가 설명할 때

카드를 만지고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뭇 '잘 들어야지' 굳은 얼굴로 한마디 했다.

카드를 만지지 않았다 해도

한 번에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지만도.

이렇게 선생님은 가끔 연기를 해야 한다. ㅎ


초등학교 1, 2학년 담임을 처음 맡게 되면

다들 같은 말을 무한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당황한다.

분명 전체 아이들에게 알려줬는데

한 명씩 한 명씩 끝없이 나와서

'뭐 해야 돼요?'

“모르겠어요”

라고  한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알려주다가

나중에는 선생도 사람인지라 화가 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다시 묻지?

선생님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으려고 하나?

 주의력부족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힘들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았다.

아이들의 뇌가 성장 중이라는 건,

사춘기가 지나야

성인과 같은 뇌의 형태가 자리 잡게 된다는 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좀 더 디테일하게 봐야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1, 2학년 아이들이 교사의 놀이 안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주의력과도 관련이 있지만

무엇보다 기억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초점이 있다.

기억에는 단기기억(작동기억)과 장기기억이 있다.

말 그대로 기억을 지속하는 시간에 따라

나눠지지만 사람이 활용하는 방식은 다른 차원이다.


사람은 단기기억 즉 작동 기억에 지금 필요한 것을

우선 몇 가지 기억해 두고 실행하는데

아이들은 이 용량이 크지 않다.

왜냐하면 장기기억에 저장된 것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경험이 전이되어 이전에 했던 것을

끌어올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럴 밑천이 없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용량이 적은 단기 기억에

이런저런 절차를 한꺼번에 욱여넣으니

 모를 수밖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들을 다시 보니

민재와 다연이 같이 나와서 묻는 아이들 말고도

대다수의 '모르고 있소'라는 표정이 보였다.


ㅎㅎ 그렇구나.

그렇다면 너희들이 씹어먹을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워야지.

그게 선생이지.


가장 먼저,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해 볼 수 있도록 놀이 시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한 번에 알아듣는

(그런 아이들이 없지는 않다.)

 아이들 몇 명을 찾아내어

곁에서 놀이하는 것을 같이 참관했다.

그러면 반 정도는 알아듣고 자기 놀이를 시작한다.

그래도 안 되는 몇몇은

내가 가서 중개자가 되어

한 팀씩 놀이를 하도록 알려줬다.

그럼 대부분의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이에 빠질 수 있었다.


어제 2-1 수업에서도 그랬다.

민재와 다연이는 내가 굳은 표정으로

짐짓 '잘 들어야지'하니 움찔했다가

뒤쪽의 태은이와 성준이의 놀이모습을 보자

 '아, 알겠어요, 알겠어요'

더 알려주려는 내게 손사래를 치고

바로 옥신각신거리며 놀이했다.


요즘 교육계에서는 학생주도수업이 한창 화두다.

IB학교도 곳곳에 생기고,

프로젝트 수업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다 학생주도 STUDENT AGENCY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수업방법을 바꾼 결과다.

나도 그 취지나 방법에서 장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이 좀 더 섬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쥐를 잡는데 고양이 색깔이 상관없다는

등소평의 말처럼


아이들의 지금 상태를 이해하고

그것이 직접 교수법이든,

시뮬레이션이든,

프로젝트든 관계없이

아이들이 씹어먹을 수 있는 수업을

마련하는 게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그 한가운데 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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