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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04. 2023

알묘조장(揠苗助長)

5월에는 연구학교나 수업우수교사의

수업 공개가 연이어진다.

미리 참관신청을 받기에 지난달

나는 3곳에 참관을 신청했다.

주로 IB PYP 월드스쿨 공개였다.

요즘 IB가 트렌드인지 공개하는 학교도 꽤 되고,

지난 2021년 1년간 IB 후보학교에 근무했던 터라  

IB 인증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겸사겸사 신청했다.


 IB 후보학교에 있을 때

관련 연수도 2차례나 받고,

관련 문건을 읽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잘 모른다.

POI, UOI, ATL, 초학문적 주제 등

용어에 익숙해지는데도 꽤 오래 걸렸고,

각 용어가 품고 있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 없었다.


어제는 차를 가지고 갈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어쩌다 보니 출발도 늦었다.

또 시외곽에 있는 우리 학교에서

또 다른 시 외곽에 있는 그곳까지 가니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


1시 30분에 시작하는 공개수업은

거의 끝부분만 볼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협의회라도 참여하면

 내용을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복도나 학급에 게시된 아이들의

학습결과물에 기웃거리다

시간이 되어 협의회장소인 강당으로 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각 반별로 수업협의회를 진행하지 않고,

강당에서 한꺼번에 협의하는 것 같았다.

교육부, 시교육청에서 온 장학진들,

다른 시도 학교의 선생님들,

관내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후끈했다.


IB 인증학교의 교장선생님이 협의회를 진행했다.

 아, 내 또래는 잘 아는 유명한 선배님이었다.

물론 그분은 나를 모르지만. ㅎ

그분이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과서를

경전처럼 여겨 수업하던 그때,

아무도 '교육과정 재구성'할 수 있다는

엄두도 못 냈었다.

 그러나 그분은 본인이 맡은 반 교육과정을

다양한 주제로 짜서 프로젝트 수업을 했던

선구자로

관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열정도, 능력도 출중해서 연구학교 연구부장을

맡다가 장학진으로 진출했다 들었다.

여전히 대단했다.


일반적으로 연구학교 공개에 가면

교장선생님은 인사말 정도 하고

연구학교 주무를 맡은 부장이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젠 교장선생님이 전반적인 내용과 상황을

알려주는 메인 스피커였다.

이어 그 학교 수석님이 나오셔서

주요 개념들을 설명해 주셨다.

나도 개념기반 탐구학습이나

이해중심 교육과정에 대해 심도 있게

실천하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다.


참 대단했다.

우리나라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 따라

내용이 강하게 짜여있는데

 IB의 FRAMEWORK에 따라 교육과정을 조직하고,

그 철학에 맞게 운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수업은 못 봤지만, 전시된 학습결과물이나

협의회에서 본 본교 관계자들의 태도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하나가 되어 IB로 녹아들고 있었다.


후끈한 잔치집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러 나오는 길이었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에 머물렀다.

느낌이 물러가자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든 생각은 '참 어렵다'였다.

설명을 듣는 내내 용어를 따라가느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한국말이고, 익숙한 교육분야인데도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인증학교라서 PDP와 같은

새로운 용어를 더 쓰는 것도 있을 테지만,

예전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무엇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힘드니,

그분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은  

더 감이 오지 않았다.

뭔가 대단하고 근사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그래 그랬다.


그다음으로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이었다.

교육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변한다.

왜냐하면 교육은 인류의 유산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IB가 처음 만들어진 유래는

세계 각 국에 흩어져 교육받는

외교관들의 자녀를 위해서였다.

각 국가의 지엽적인 사실이나 가치는

외국인인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사정에 의해 교육이

중단되는 시간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보다 크게 세상을 보는

일반적인 관점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진행할 프로젝트 내용이 필요했다.

그들이 국지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해도

그들의 학습과정을 인정해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IBO에서 인증해 준다.

그래서 구체적 사실에서 추상적 개념을

일반화하기 위해 애쓴다.


구체적 사실에서 추상적 개념을 추출해서

깨달은 개념은

더 많은 더 폭넓은 구체적 사실을

포섭할 수 있다는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아이들에게도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필요한가?

라는 부분에서는 의문스러웠다.


내가 알기로

IB학교에서는 교육과정 구성

즉 POI나 UOI를 작정할 때

백워드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아마 교사가 아이들이 익혀야 하는 일반화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디자인할 뿐,

이를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섬세하게

구현될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초등교육은 뿌리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사실을 아이의 발달 수준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익히고, 읽고 쓰고 셈하며

생각하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그것이 쌓이면 추상적으로 생각해 보고,

일반화된 개념까지 옮아간다.


개념화하는 것은 어른들도 어렵다.

그리고 개념화한 것을 구체적 사실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깨달음의 경지일 수도 있다.

메타인지가 많이 발달해야 하는 일이다.

메타인지는 인위적으로 발달하기가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통찰해야 한다.

절대 쉽지 않다.


그것을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또 하는 것을 바탕으로 성장하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되었나,

관계 문헌을 보고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

혹시 괜한 욕심은 아닌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억지로 성장시키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앞서 말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모를 심어 두고,

빨리 벼로 컸으면 하는 마음에

모를 당겨 뿌리가 위로 올라오게 만드는

농부의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빨리 자라게 하려고 당겨진 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들 예상하듯 뿌리가 땅에 단단히

안착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30여 년 우리 교육계를 휩쓸었던

'열린 교육'의 광풍이 떠올랐다.

열린 교육은 교육계 곳곳에 공과를 남기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IB가 또 다른 열린 교육이 되지 않기를.

우리 교육에 공을 과보다 더 많이 남기기를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버스를 오자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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