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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08. 2023

한글튼튼 교실 1편

2학년에 하랑이가 있다. 

하랑이는 중간키에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작아 귀여운 여자 아이다. 

하랑이와 나는 작년 가을 

1학년 통합교과 '가을'' 수업을 

하면서 만났다. 


수업 시간 중, 

하랑이는 조용히 

선생님인 나를 응시했다. 

친구와 장난치지도 부산스럽지도 않았다. 

태도가 참하고 귀여워서 눈길이 갔다. 

하랑이는 내가 질문하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발표는 하지 않았다. 

질문에 답을 써야 할 땐, 

조막만 한 손으로 연필을 잡고 

연필로 이마를 톡톡 치면서 생각했다. 

결국 쓰지 못했다. 


담임 말로는 그때까지 하랑이는

 한글을 못 익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답을 책의 빈 곳에 써주면 

그제야 그리듯 열심히 따라 썼다. 

그러나 가을을 지나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도

 하랑이는 글을 잘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하랑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중에는 말을 걸면 개미만 한 소리로 대답해서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학년이 끝나고 다시 2학년이 된 하랑이를 마주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작년 한 학기 동안 하랑이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올해 초 기초학력 담당 부장은 

총 6명의 2,3학년 '한글 튼튼교실'

대상자가 있다며 알려왔다. 

이들은 입학한 지 1년 이상 되었지만 

한글을 미해득한 학생들이었다. 

그중, 하랑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한 번도 웃지 않은 하랑이의 얼굴과 함께, 

다음 이미지가 떠올랐다. 


앞에 큰 강이 있고, 강 중간쯤에 배가 있다. 

모두들 배를 타면 재미있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흥분한다. 

하랑이는 강기슭에서 물에 발을 담갔다가 빠지고,

 다시 담갔다가 빠지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배를 향해 열심히 헤엄을 쳐서 

도착한 의기양양한 모습.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랑이. 


하랑이에게서 가끔 보았던 쓸쓸한 눈빛이 가슴 아팠다.

 수업 시간에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도저히 모른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4월부터 일주일에 2번 수업을 마친 다음 

하랑이를 지도하게 되었다. 


한글만 집중적으로 지도하게 되니 

나도 공부를 해야 했다. 

2011년 1학년 담임을 마지막으로 했으니, 

그간 발전된 지도법이나 

교수자료 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소위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김영숙 교수의 <체계적으로 배우는 읽기 & 쓰기> 

책을 추천받아 1달 정도 공부했다. 

교육학 서적 중에는 선전과 다르게 

내용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안 그랬다. 

말 그대로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책의 내용을 토대로 나는, 

몇 가지 효과적일 것이라 예상되는 

지도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1. 가르치기 전에 친해지기 

2. 하랑이 맥락에서 의미 있는 것부터 다가가기 

3. 소리와 글자의 관계 이해시키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목표다.) 

4. 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화 많이 하기 

5. 읽기 이해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수준의 그림책을 활용하기 


4월 둘째 주 월요일에 나는 

지금까지의 하랑이와는 비교할 수없이 

긴장해있는 하랑이를 처음 만났다. 

수업 시간에 만나는 하랑이도 

여유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한글 튼튼 교실'에서 홀로 만나는 하랑이는 

마치 꽝꽝 얼어서 바늘 끝만 갖다 대도 

쨍하고 금이 갈 얼음 같았다. 


음...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굳이 말하지 않고, 듣지 않아도 

짐작되는 부분이 커지고, 

그 짐작은 사실로 드러나는 때가 종종 생긴다. 


'아, 한글 공부를 정말 많이 했겠구나.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 되어버렸구나. 

본인이 모르는 것을 들킬까 봐 가슴 졸이고 있구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더 빨리 알아가라고 재촉을 받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뭐 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하랑이는 가만히 있었다. 

'산책 갈까?'라는 말에 좋아라 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둘이서 학교 뜰에서 한 시간 동안 놀았다. 

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냄새 맡고, 만져서 촉감을 느꼈다.

 나무도 풀도 그랬다. 

신발 벗고 맨발로 잔디 위를 살며시 걸어보기도 했다. 

바위 위에 앉아 눈 감고 바람도 느꼈다. 

당연히 하랑이는 팻말에 나온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잘 읽지 못했다. 

내가 대신 읽었다. 


마지막에 가장 좋은 향기를 내는 

꽃을 다시 찾아보자는 내 말에 하랑이는 

라일락꽃을 가리켰다. 

한 송이 떼서 손에 올려주었다. 

하랑이는 나무 아래를 보고 "수... 수."했다. 

'수수꽃다리' 

미간을 찌푸려 팻말을 읽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오~ 수수 꽃 다리야. 이름이 참 곱지?" 하니, 

미간이 펴지고 입가에 예쁜 볼 우물이 패였다. 

처음으로 하랑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학교에는 느린 아이들이 있다. 

같은 것을 같은 때에 배우는 학교 환경에서 

한고비를 넘기지 못한 하랑이들은 

다음 고비를 또 못 넘고 계속 뒤처진다. 

사람의 능력이 다 다른 때문이다. 

그렇다고, 느린 아이들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맞출 수도 없는 현실이다. 

또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닌 게

 세상살이는 정말 다양해서 다른 분야에서는 

느린 아이들이 잘 하기도 한다. 

다만 그때까지 아이가 실망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나아가도록 손잡아 줄 

누군가가 있으면 된다. 


근대 학교 제도가 생기고 또래보다 

느리게 배운 학생은 계속 있어왔다. 

예전에는, 정말 오래전에는 

받아쓰기를 잘 못해도 글을 잘 못 읽어도 

손바닥을 맞거나 망신을 당했다. 

그래도 요즘은 느리게 배운다고 

공식적으로 탓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그래. 

조금씩 세상은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 

이렇게 배우다가 어느 순간 하랑이도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만나면 

이 고비를 훅 넘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천천히 함께 가야지. 

올 한 해는 내가 하랑이 손을 꼭 잡고 가야지. 


맞잡은 손을 신나게 흔들며 교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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