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50일이 지났다.
한글 튼튼교실에서 함께 하게 된 후,
수업 시간에 만난 하랑이는 전 같지 않다.
나를 더 친밀하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수업 시간에도 더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보인다.
하랑이는 방과 후애
한글튼튼교실에 오는 걸
좋아하는 듯 보인다.
급식시간에 밥을 먹자마자
한글튼튼교실에 헐레벌떡 뛰어온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긴장이 풀린 듯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습자료를 만져보기도 하고,
바퀴 달린 의자를 살살 굴려 타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어땠을까?
이런 하랑이의 긍정적인 변화,
즉 한글 공부하는 시간을 기대하고,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안심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무겁고 초조했으며
방향을 잃은 듯했다.
나는 하랑이를 3가지 측면에서 파악했는데
첫째는 앞에서 말한 대로 심리적인 변화다.
매우 긍정적이고 하랑이가
앞으로의 학습을 잘 이어나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버팀목과 같다.
그러나 다음은 인지적인 변화인데
하랑이는 모음의 음가를 같은 부분에서
계속 구분하지 못했다.
단모음 중 'ㅏ, ㅓ, ㅗ, ㅜ'는 구분하고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ㅡ, ㅣ'는 엉뚱하게 읽기 일쑤였다.
'그, 기'는 읽지만,
'프, 피'는 '푸, 시' 혹은 '케, 키'로 읽는 등,
아무 자음이나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거의 한 달 동안 단어 카드로,
그림책으로, 낱자 장난감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며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직 'ㅣ, ㅡ'의 음가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했나 보다 이해하면서도
한편, '이렇게 간단한 것을
이토록 반복하는데도
이게 왜 안되지?'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하랑이는 여전히 연필을 잡는데 힘이 없어
글자 선이 삐뚤삐뚤하다.
또, 따라 말하거나 글자를 소리 내어서 읽을 때
여간해서 발음이 또렷해지지 않는다.
특히 이중모음인 'ㅔ'발음과 'ㅖ'발음이
말소리에서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혹시 발음하는 신체기관에
기능상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한글 튼튼교실 공부 시간이
늘 새로 리셋되는 느낌.
이미 출발신호를 듣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앞으로 쭉쭉쭉 달려가야 하는데.
하랑이는 내게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 여기로 오세요"
라고 다시 출발점에 서라며
매시간마다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리스신화에서
신의 노여움을 산 시지프(코린토스의 왕)에게
부여된 형벌이 떠올랐다.
매일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면,
그 바위는 아래로 같은 자리로 굴러떨어진다.
그것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끝없이 반복되는
무력한 느낌이랄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처음에 가졌던
'올 한 해 내가 하랑이의 손을 꼭 잡고 가겠다'라는
뜨거웠던 나의 다짐은 조금씩 조금씩 식어갔다.
슬금슬금
'정말 안 되는 거 아닌가,
작년 1년 동안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시켰다는데 이런 걸 보면,
어쩌면 올해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때부터 한글 튼튼교실만 생각하면
먹은 게 소화되지 않은 듯했다.
며칠전 월요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점심을 먹고
하랑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학교는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산과 들 한가운데 조성된 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상가와 아파트가 모여있는 중심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자연이 훅 다가온다.
건물이 많지 않아 학교 창문으로도
멋진 산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산은 온통 연초록이었다.
이맘때 산은 이렇게 멀리까지
싱그러움을 전해주는구나.
길었던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자
나무들이 잠재력을 온통 뽐낸 덕분이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때가 되니 자기 몫을 하는
나무 하나하나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기특한 나무처럼 하랑이도
자기 몫을 하려고 교실로 들어섰다.
서두르느라 촉촉하게 땀이 배고
발그레해진 하랑이의 얼굴을 보자,
예전에 읽었던 <그릿(GRIT)>의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가진 재능형과
노력형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의 특성을
GRIT이라는 말로 정리한
안젤라 더크워스의 유명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GRIT은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를 뜻한다.
재능이 많지 않더라도 GRIT이 높은 사람이
결국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조목조목 안내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천재'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노력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한 심리적 기제라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탁월함은 일상에 있다.
탁월함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탁월함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일상은 지루하고,
힘이 들고, 품이 들기 때문이다.
수업한지 한 달 남짓 지나자마자
하랑이의 능력이 안되니
올해도 한글을 익힐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
생각한 내 마음이 선명하게 비추어졌다.
내 기대만큼 변화하지 않는
하랑이의 성장을 보는 것이 지루하고,
그러니 마음에 힘이 들고,
더 이상 품을 들여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릿(GRIT)>에서는 말한다.
재능*노력=기술이고 기술*노력=성취라고.
재능은 기술을 익히는 시간을 말하는데
재능이 없다면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러니까 성취를 하려면 노력을 제곱으로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하랑이는 아직 어린아이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때는
놀 때밖에 없다.
오직 즐거워지는 놀이라는 상황에서만
아이들은 더 잘 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많은 교육학,
특히 유아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방법론에서 학습을 놀이에
접목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행히 하랑이는 한글 튼튼교실에서 하는
여러 활동을 놀이로 여기는 것 같다.
매우 열의를 가지고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
하랑이가 성장해서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날까지
누군가는 이렇게 하랑이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두 번 하는
한글튼튼교실에
더 노오력을 기울여야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그래, 바로 선생인 나다.
탁월함을 가져오는 비밀인
일상을 열정적 끈기로 GRIT 살아내는 것.
지금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다.
어쩌면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말하고자 한
'반항'도 이것과 맥락을 같이하지 않을까?
일상의 지루함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며 버텨나가라는 것,
그것이 삶이고,
그런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만
우리는 실존한다는 것.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지프의 모습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한
카뮈는 우리에게 말한다.
"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오늘 나는 한글 튼튼교실에서 실존하려 한다.
하랑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