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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11. 2023

너무 친절한 선생님 전편

“너무 안된 거예요. 그 강아지가. 

주인 발밑에서 한번 안아달라고 

그렇게 낑낑대는데 

주인은 딴 데만 보고 있는 기라. 

그래가 되겠어요? 

우리 선생님들은 현장에 나가시면 

그렇게 하지 마세요. 

아(이)들을 한 번 더 봐주고, 

한 번 더 (머리) 쓰다듬고. 그게 사랑이라. 

사랑해주면. 그러면 된기라. 

교육은 끝난기라.”


정확히 20년 전, 

그러니까 2003년 2월 교육지원청 회의실에서 

나는 이 말을 들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에서 근무하다가 

사직하고 다시 친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경력 있는 신규 교사였다.

 “신규 임용 초등교사 안내 연수”라는 이름으로 

지원청 소속 약 50여 명의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육장은 꽤 오래 당부 말씀을 이어갔다. 


출근길에 우연히 신호대기 중 

식당 앞 가로수에 묶여있는 강아지와 

주인인 듯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강아지가 주인을 보고 아무리 꼬리치고 

앞발을 들어도 주인은 무심히 

식자재 정리만 하더라는 일화를 서언에 풀었다. 


그렇게 이어진 말씀의 요지는 

‘교육은 사랑에서 비롯되며 

사랑만이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에 

사랑이 없으면 교육이 아니다’였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사랑으로 교육하기”라는 명제는.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별같이 흔하지만, 

다가가기에는 요원하다. 


그동안 아주 가끔 이 말이 생각났다. 

말의 진위를 떠나 오로지 내 힘듦을 기준으로, 

때로는 맞다 ‘아이들을 사랑해야지’ 싶다가도, 

때로는 아니다 ‘아이들 사랑하다가 내가 죽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이제 교사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지금, 

나는 이 말에 대해 좀 다르게 접근하게 되었다. 


수석교사로 지내면서 감사하게도

 나는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초등 선생님들은 정말 성실하다. 

아마 중등 선생님들도 그럴 것이다. 

전체 인구에서 성실함이 촘촘한 체로 걸려 낸 

사람들만 학교에 모은 것 같을 정도다.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다수의 과목을 수업하므로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한다. 

거의 매일 자료를 찾고, 찾은 자료를 서로 공유한다.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에도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수업도 참관하며 

자신의 수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한다. 

학교폭력에 민감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요즘엔 인성교육이나 학급 경영과 

같은 주제도 관심이 높다.  


3월이 되면 선생님들의 고민과 관심에 대한 

긴장도는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선 주자들처럼 

최고조다. 

그리고 3월, 정말 열심히 사랑한다.

최선을 다해 친절히 대하고 

겨울 방학 때 참여했던 연수에서 배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러다 4월에 들어서 

1달 남짓 맹렬히 끌고 왔던 학습 훈련이나 

기타 학급 경영 방법들에 대해 

아이들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이 눈에 띈다. 

또, 아이들 중 몇몇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이를 방해하는 것 같다. 


실망한 마음과 지친 몸은 

그러지 않아도 변덕스러운 봄날씨에 

결국 심하게 몸살을 한다. 

바쁜 4월부터 6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어느새 여름 방학이 성큼 다가온다. 


잠시 쉬고 2학기가 되면 다시 심기 일전하지만, 

1학기보다 더 바쁘다. 

문득문득 이게 아닌데 싶다가도 

곧 바쁜 세월의 물살에 휩쓸린다. 

정신 차리고 보면 11월, 

그때부터 옆 반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선생님은 내년에 몇 학년 할 거예요?”


내가 관찰한 바로는 

경력이 10년 남짓 넘을 때까지 

이런 경향은 점점 증폭된다.

 뭔가 잘해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 

1년을 살았는데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혹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는다. 


그러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각자의 도가 튼다. 

어느 정도 아이들과 거리도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교과 지도나 학급 경영에도 전처럼 허둥대지 않는다. 

그래도 수업을 공개하거나 연수를 진행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무리 경력이 켜켜이 쌓여도 여전히 힘들다. 


나 역시 그랬다. 

나도 참 성실해서 

무지무지 열심한 선생님이었다. 

특히 “사랑으로 교육하기”는 

사명처럼 가슴에 콕 박혀 있었다.


 얼마나 소리를 높였는지 

4월이 되면 여지없이 성대결절로 인해 

이비인후과의 단골 고객이었다. 

그런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각 종 수업 공개를 참관한 후, 

내 직업적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공개 학급의 아이들은 

어쩜 그리도 학습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선생님의 말을 잘 알아듣는지. 

복도나 학급 게시판에 전시된 

학습 결과물의 수준도 우리 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학교급별로 아이들의 가정환경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이를 비집고 뚫고 나오는, 

또 그 차이를 상쇄하는

 선생님의 지도력이 보였다. 


도대체 ‘저분들’은 어떻게 할까?


거기에 대한 통찰을 

나는 ‘교육부 시범 연구학교’에 근무하면서 얻었다. 

10년 차 정도의 교사였던 나는, 

이전에 4 급지에 근무했던 덕분에 

관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생님들이 

모였던 학교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학교는 50 학급 이상의 대규모 학교였고,

 한 반에 아이들도 35명 이상의 과밀학급이었다. 

연구학교여서 여러 가지 할 일이 많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근무 환경의 편의성만 따지면 

같은 규모의 다른 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궁금했다. 

바로 옆에서 ‘그분들’을 보고 싶었다. 


4년 동안 나는 1년을 5학년 담임으로, 

3년을 1학년 담임으로 근무했다. 

총 9개 반이었던 1학년에는 

‘그분들’이 몇 분 계셨다. 

대부분의 ‘그분들’은 1년 후 관리자나

 장학진으로 승진해 학교를 떠났다. 


나는 1학년을 내리 담임하면서

 ‘그분들’ 한 분씩 면밀히 관찰하고 알게 된 것을 

한 해, 한 해 실천하고 검증했다.

마지막 해에는 ‘그분들’의 공통점을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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