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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y 16. 2023

너무 친절한 선생님 중편

일단 눈에 보이는 공통점은

반전이 있는 면모였다.

여러 가지 물건이 많아 언뜻 어수선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유기적으로 잘 정돈된 환경,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질서가 잘 잡혀있는 아이들,

준비할 때도 대충, 가르칠 때도 대충인 것 같은데

결국은 꽤 훌륭한 학습 결과물.


이중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두 번째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질서가 잘 잡혀있는 아이들 “이었다.

친절하게 대하니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봐서

학급 질서가 잡히질 않고,

학급 질서를 잡으려면 엄격하게 대해서

아이들과 관계가 어그러지기 일쑤였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지만,

그 잘하는 것이 어떤 지점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궁금해서 많이 물어봤다.

그런데

‘학기 초에 아이들 기초 학습 훈련에 중점을 뒀고,

교과서보다는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했고,

결과물이야 아이들이 하는 거고.’

 ‘……’

듣고 나면 너무 뻔해서 뭔가 맥이 빠졌다.


나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가가 막연해서 힘든 건데.

가만 보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물 흐르듯 그냥 하면 되는 일이라

그것을 굳이 의식해서 매뉴얼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서

말한 대로 ‘모방’이다.


매주 무엇을 하는지 보고 따라 하려면

수업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당시 매주 금요일 오후에 했던 ‘동학년 모임’이

있긴 했지만,

 업무전달 위주라 수업에 대해

각 잡고 이야기하기엔 분위기가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RG모임‘을

따로 만들기로 하고

먼저 후배들을 꼬셨다.

국, 수, 바, 슬, 즐 중에서 각자 한 과목씩 맡아

한 주 동안 나갈 진도를 살펴보고

브리핑하자고 했다. ’

그분들‘은 대부분 학년부장이나 업무부장을

맡고 있어 바빴다.

가끔 참여만 해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RG모임‘은 꽤 효과가 있었다.

 ’그분들‘이 없어도 일단 우리끼리라도

다음 주 수업을 공부하니

학교 생활에 여유가 있었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료 찾기도 좋았다.

그러다 가끔 참여하는 ’그분들‘은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 후, 가장 먼저 눈에 띄게 우리 반 환경이 달라졌다.

나는 물건을 쌓아두질 못한다. 깨끗하게 잘 치운다.

교실에 아이들 학습 결과물을

한, 두 주 정도 전시하고 집에 보내거나

치워버리기 일쑤였다.

우리 반에 들어온 사람들은

교실이 깔끔하다고들 입을 모았다.

깔끔하고 보기 좋다고.


그러나 ’RG모임‘을 하고,

 ‘그분들’ 교실에 이런저런 이유로 드나들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 입장에서

교실 환경을 생각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과연 아이들에게도 ‘먹기 좋은 교실’이었을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수업 첫머리, ‘지난 시간에 무엇을 배웠나요?’를

질문하면

 아이들은 몇몇을 제외하고 뭐 했더라?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책을 뒤적였다.

특히 느리게 학습하는 아이일수록

말간 얼굴로 눈동자를 위쪽으로 이리저리 굴렸다.

만일 자기들이 한 결과물이

시간 순서에 따라 붙어있었다면 어땠을까,

좀 더 쉽게 이전에 했던 것과

앞으로 할 것을 연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교실이란 하나의 멋진 사진이 깔끔하게

전시된 갤러리가 아니라 이런저런 사진이 모여

이야기가 되는 사진첩처럼

기억을 불러오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구나.

그 후 조금씩 아이들의 이야기를 교실에 모아갔고,

아이들의 이야깃거리도 늘어갔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교과서대로 가 아니라 교육과정 위주’로

수업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내게 그 말은 교육과정을 보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맞춰 리듬이 있게

수업한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강약약, 중강약약’처럼, 혹 은 ‘강약중강약’처럼

힘을 주고 빼는 리듬 말이다.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서 힘을 빼는지는

 ‘그분들’마다 다 달랐지만,

어쨌든 3월의 ‘강강강강’이

어느 순간 ‘약약약약’으로 바뀌는 나와는

차이가 있었다.

내가 힘이 있을 땐 강하게 힘주어 수업했고,

나도 사람인지라 힘을 다하면 뭉뚱그려

넘어가거나 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참 융통성이 없다.

너무 곧이곧대로의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정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한 구석이 있다.

나는 교과서대로 빠짐없이 매 차시마다

‘매매“ 수업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초점은 수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는 데 있었다.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수업을 해도

아이들이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힘만 드는 그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그때부터 나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보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특히 강조해서

수업해야 할 것과

뭉쳐서 수업해야 할 부분으로 구분했다.

그러자 강조해야 할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수업하기 위해

도입할 수업 방법도 자연스럽게 걸러졌다.


마지막으로 수업 방법이 잘 정제되었다.

어느 교사도 세상에 좋다는

모든 수업 방법에 있어서

 다 능숙할 수는 없다.

교사 개인의 타고난 특성에 따라,

경험에 따라 더 잘 지도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내가 저학년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내 경우에는 교육과정을

주제 중심 ‘프로젝트 학습’으로 으로 짜고,

단위 차시에 있어서는 ‘역할극’을

활용하는 수업에 자신 있었다.


역할극은 학습자들이

실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역할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창의적이고 즉흥적인 극활동을 말한다.


크게 role-taking과 role-making로 나누는데

암기보다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상황을 체험하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바른 생활과 수업의 경우,

다양한 실천 활동 속에서

학생들이 기초 생활 습관과 기초 학습 습관을

형성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역할극을 활용하면 효과가 좋았다.

 있을 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른 지,

바르지 않은 행동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학생들이 고민하도록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역할극은 그 자체로

하는 학생들이나 보는 학생들 모두에게

정말 큰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역할극을 도입해서 하는 방법만 익히게 되면,

저절로 학생 주도 수업이 이루어졌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공연한 역할극을 text삼아

수업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서 좋고,

학생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재미있게 한 활동으로

 공부한다는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그야말로 1석 2조였다.


그렇게 보고 따라 했다.

후배들을 꼬셔서 모임을 하고,

거기서 함께 알게 된 것을 실천하고 검증했다.


3년이 지난 후,

나는 어떻게 하는지

명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었지만,

 ‘저는 하니까 잘 되던데요’식으로

말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수업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 앞에서 수업하는데도

그전처럼 겁이 나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수업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수업에 있어서는 그랬지만,

여전히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질서가

잘 잡혀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뭔지 알 길이 없었다.

뭔지 몰랐으니 고민할 수도 없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내 성격상 안 되는 일이라 치부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실체 없는 그 고민을 나는 몇 년 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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