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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손미 Jul 24. 2024

서른 넘어 ADHD를 발견하다.

와이프 덕에 ADHD 찾게 되다.


나는 내가 ADHD 환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이프가 "오빠 ADHD 있을 것 같으니까 반드시 정신과 가서 진단받고 와....."라고 낙담하면서 말할 때까지는.



그래서 처음으로 ADHD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볼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아왔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가 ADHD가 있을지 상상도 못 했고 의심도 해본 적이 없다. 보통 ADHD는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분노를 못 참고 방방 뛰는 아이들로 묘사되어 TV에 방영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2023년도에 압구정의 모 정신과를 찾아갔다. 유튜브에서 소개한 선생님이라 아내가 추천해 주었다. 뇌파검사, 병력검사, 문진을 진행하였다. 우울증은 진단받았지만, ADHD는 진단받지 못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2020년도부터 우울증 치료를 이따금씩 받아왔었다. 건대입구역 쪽에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일을 상당히 많이 해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 스케줄은 주 7일 업무 + 투잡 + 대학원 + 결혼준비 + 연애까지 병행했다. 사람마다 버틸 수 있는 양 이상의 일을 하면 마음에 계속 짐들이 쌓인다고 정신과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워커홀릭 중에 더러는 40-50대 완전히 번아웃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마음에 어려움이 쌓여 그렇다고 하셨다. 나 또한 이런 경우일 수 있다고 인생을 한번 돌아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침에 따라 우울증 약을 처음 먹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도 처음으로 느꼈다.



선생님께서는 ADHD가 쉽게 받을 수 있는 질환이 아니고 문진과 여러 검사들을 통해 보았을 때, 지금 당장은 ADHD 판명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한번 더 병원에 찾아와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시간 내서 병원에 찾아가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다시 내원하지는 못했다.



나 또한 ADHD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병원에 갈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결혼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있는데 ADHD일리 없지로 의심 한번 없이 지나왔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ADHD야.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사는데
ADHD면 가능했겠어?!"





나는 나의 ADHD로 인해서 아내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관심 없는 주제나 이야기가 나오면 아내가 말을 하는데도 잠에 들기도 하고,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못해 자주 둘러대고 핑계를 대기도 했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쓰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 돈에 관련된 일 말고는 시간을 자주 늦는 것 같았다. (돈에 관련된 일에는 굉장히 철저했다. 먹고사는 게 걸린 일이라 무조건 철저하게 했다. 하지만 그 외 것들은...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이것저것 무언가를 많이 하곤 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한 두 번 늦는 거 가지고 그러냐고

오히려 반박하고 변명했었다. 육아하면서도 딴생각을 하거나 핸드폰에 중독되거나 일상적인 시간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게 다 ADHD 때문이었다.



2024년 4월 경 오은영 박사의 유튜브 채널 등을 보고 내가 ADHD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가 많고 중독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관심 있는 것 외에는 집중을 꺼버리거나

머리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생각이 폭주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서

남들도 다 이렇게 사나 보다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ADHD 사례를 종합해 보았고, 다소 솔직한 의견들이 적힌

디시인사이드에서도 ADHD 증례들을 찾아보았다. 위에 글들에서 본 개개인들의 ADHD 특징들을 내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원래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 포함 ADHD인 사람들이 이렇게 사나 보다.



이것도 위에서 찾은 글인데 내가 평소에 이렇게 살고 있었다 정말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머리에 돌려놓고는 계속해서 관심사가 바뀌거나 추가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머리에 생각이 폭주해서 하루가 끝날 때쯤에는 매일매일 파김치가 됐었다. 결론적으로 24년 올해 ADHD 진단을 받고 나서, 내가 가진 성격들 중 많은 부분이 ADHD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간관리나 현재 일에 집중이 어려워 관심 있는 것들 외에는 아예 집중을 꺼버린다거나 관심을 거두었다.



나는 유년시절 독특하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부단한 나름의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해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하고 살았다.


예를 들면 차분하게 있는 척을 한다던지 범생이처럼 산다든지, 착하게 대한다든지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볼 때는 착하고 모범생이고 착실한 이미지로 볼 수 있게끔 나름의 연기를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ADHD를 늦게 발견한 것도 있겠다 싶다. 보통 ADHD 하면 교실 밖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항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겨우 참고 살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남들이 안 좋아하는 것을 알고 미리 그 행동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ADHD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불쑥불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알 것이다. 사실 무엇을 하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있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다.




다음 글

ADHD에 대해 기술할 부분이 너무 많아, 다음 편에서 이어서 하겠다. 24년 이종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받은 것들을 공유해 보겠다. 이종일 선생님은 정말 나의 은인이다. 그 선생님 덕에 편안한 일상을 인생에 처음으로 맛보고 있다.




글쓴이 소개

피손미 (두 아이의 아빠)

전   공 : 서강대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 석사

경   력 : 前 Dr.Glass, Inc. COO

              現 Data Korea, Inc.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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