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만 해도 에어컨 같은 건 흔치 않던 시절
모기장 안에 누운 첫 아이의 주변에서
여름밤 시원하게 바람을 날리던 젊은 선풍기
이제 쟤도 한 서른 살이 넘었는지 몰라
용케도 이사 때마다 버려지지 않고 따라와
갈수록 참을 수 없는 열대야와 싸우고
고단한 몸을 끌고 날개를 돌리며
끙끙 소리로 둔한 목을 회전시키며 늙는다
왼쪽 오른쪽 버겁게 목을 비틀기는 하지만
강풍을 틀어도 미풍밖에 안 되는 바람으로
굳어 좌우의 생각이 쉬이 변환되지 않는
낡은 내 몸을 식히며 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해도 일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고
무얼 하다가도 금방 까먹고 돌아서는 나는
늙은 선풍기와 함께 밤새 한두 번씩 깨어
지나간 시간을 복기하며 벽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