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종호 Sep 20. 2022

늙은 선풍기

그때만 해도 에어컨 같은 건 흔치 않던 시절

모기장 안에 누운 첫 아이의 주변에서

여름밤 시원하게 바람을 날리던 젊은 선풍기

이제 쟤도 한 서른 살이 넘었는지 몰라   

  

용케도 이사 때마다 버려지지 않고 따라와

갈수록 참을 수 없는 열대야와 싸우고

고단한 몸을 끌고 날개를 돌리며  

끙끙 소리로 둔한 목을 회전시키며 늙는다   


왼쪽 오른쪽 버겁게 목을 비틀기는 하지만

강풍을 틀어도 미풍밖에 안 되는 바람으로 

굳어 좌우의 생각이 쉬이 변환되지 않는 

낡은 내 몸을 식히며 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해도 일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고

무얼 하다가도 금방 까먹고 돌아서는 나는 

늙은 선풍기와 함께 밤새 한두 번씩 깨어 

지나간 시간을 복기하며 벽을 바라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진강 3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