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편 16

와흘 본향당

by 전종호

서방이 시앗을 보았습니다

시집간 딸이 또 딸을 낳았습니다

웬수 같던 서방이 바다에 나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서방도 없는 시집살이가 너무 고됩니다

노망난 시어머니는 죽지도 않습니다

눈물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서

썩어가는 시커먼 속내를 싸 들고

여인들의 신 본향당 할망께 와서 빌고

주먹으로 탕탕 가슴을 치며 또 빌었습니다

속을 열어 털어낼 것들이 많을수록

하얀 소지素紙를 수십 장 가슴에 대고

울며불며 속엣것을 다 토해내면

눈물과 하소연이 흠뻑 땅을 적시고

눈물 배 누런 소지를 가지에 걸어 두면

할망이 읽고 하나하나

한 많은 이 년의 소원을 풀어 줍니다

울고 빌어 속이 가벼워질 수 있도록

당나무 앞에 촛불을 밝히거나

물색천을 나무에 걸어 두거나

색동 치마저고리나 쌀 한 말 바치오니

이 갈가리 찢어진 심정을 안아 주옵소서

이레날마다 열리는 여성의 지성소至聖所

팽나무숲이 눈물의 바다로 넘실거립니다


이렛당* 이레마다 열리는 굿당

폭낭* 팽나무의 제주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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