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여행 칼럼〕 어쩌다, 히말라야 25

산 위에서 듣는 강물 소리

by 전종호

오늘의 목표는 체르고리(4984m). 높고 먼 길이어서 토스트 몇 쪽으로 아침을 급히 때우고 점심을 싸서 일찍 새벽길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떠났다. 포터인 다와와 함께 천천히 어슴푸레한 길을 잡아 걷는다. 랑시샤카르카(4160m)로 가는 길이다. 계곡은 온통 너덜 갱으로 덮였고 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사막의 와디 같은 건천이다.

길은 계곡 위 산 쪽으로 구불구불 나 있다. 여기의 길은 눈으로 보면 금방인데 걸으면 구만리 길이다. 참 신기한 것이 이렇게 높고 험한 길인데도 걷는 사람이 있고, 길의 끝에 길에 매달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계곡을 지나고 산을 넘으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몇 사람씩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한 시간 정도 걸어가니 길은 계곡을 버리고 정상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올라갈수록 길은 눈으로 덮여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국이 길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눈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앞 발자국을 밟고 가는 것이 최선이다. 4,500미터 고지를 넘어서면서 점점 숨이 가빠진다.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좁은 구석을 비집고 들어와 얼굴을 때린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아진다.

앉아서 옆을 보니 어제 올랐던 강진리의 측면 사면이 보인다. 어제 길을 따라가며, 그리고 산 위에서 볼 수 없었던 산허리의 날카로운 절벽이다. 희한하게도 눈 덮인 모습 속에서도 한쪽으로는 싸락눈 하나 쌓이지 않은 찰흙 같은 절벽이 보인다. 눈으로 덮여 있는 세계 속에서 저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절개지切開地 같지는 않고 눈이 쌓일 수 없는 황산 성분이 강한 바위 덩어리인 것 같다.

손가락이 얼어 사진 한 장 찍기가 어렵다.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린다. 줄곧 걸어도 걷는 시간에 비해 오르는 거리는 쉽게 단축되지 않는다.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니 근육 활동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 지금까지는 잘 올라왔는데 계속 걸을 수 있을까? 회의감이 갑작스럽게 올라오면서 자신감은 급 하강 중이다. 지금까지는 계획한 대로 하루 하루치의 분량을 걷고 잘 올라왔는데 목표를 고수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갈등이 계속된다. 저만치 앞서 올라가 있는 다와를 부른다. 힘들다, 얼마나 더 가야 되는가 묻는다. 2시간 아니면 3시간? 저도 안 가봐서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하지 물으니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지난해에 이어서 두 번째 함께 히말라야 산길을 걷는 아이다. 아들하고 나이가 같은 아이라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카톡으로 연락해서 이번 산행 일정을 함께 짜고 짐을 들어주고 걷는 아이다.

욕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좀 더 가보자고 하니 두말없이 가방을 메고 앞장서 걸어간다. 다와가 낸 길을 따라 걷는다. 산꼭대기에 거센 바람이 부는지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팀은 코빼기는 물론이고 배낭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정말 걸음이 한 발짝도 떼어지지 않는다. 숨을 제대로 고를 수가 없다. 다시 다와를 불러 그만 가자고 말하니 옆 바위에 걸터앉는다. 물을 마시고 초콜릿을 꺼내 먹고 아침에 가지고 온 차가운 빵조각을 천천히 씹어 먹는다.

몸을 안정시키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렇게 세 시간 이상 힘들게 올라왔는데도 내려다보는 길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 머물렀던 강진 곰파 마을 쪽을 보고, 마을에서 다시 아랫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머릿속으로 가늠해 본다. 며칠 동안 걸어왔던 길을 아래로부터 복기해 본다. 3,000미터까지는 아열대 우림 속,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3,000미터를 넘어서면서, 관목 사이에 드러난 ‘보이는 길’을 따라왔다. 체르고리 4,500미터 이상 고지에서는 ‘없는 길’을 러셀 해가며 가고 있다. 사는 일이 다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청소년기를 헤매다가, 중장년 시기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노년기에 없는 길을 각자 알아서 헤매는 것,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앉아 있는 사이에 잠깐 들었다 사라진다.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을 포기하고 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자 잠깐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다. 랑시샤카르카 계곡 가까운 길에 도착하자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고질병? 갑자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물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아니 이 계곡에 들어오면서부터 따라오던 물소리는 다 어디로 간 거지? 아랫마을에서 잠을 자지 못하도록 나를 깨우던 물은 상류에 와서 다 어디로 갔지? 빙하가 물의 원천이고, 산 위는 빙하로 뒤덮여 있는데 저 빙하의 물은 어디로 숨어 아래로 흘러간 것일까? 강마을 사람은 강물 소리를 들으며 사는 법인데, 강마을 사람인 내가 요 며칠 물소리를 잊어버리고 살았다니? 마치 코를 골며 자는 사내만큼 거친 아랫마을의 강물 소리를 생각하면서 땅속에서 숨어 고요한 랑탕 콜라(강)를 찾아 귀를 기울인다. 세상의 꼭대기 산에 올라와서 물소리를 찾고 있다. 물이 세계다.

높은 산에서 보니 물이 곧 세계라/ 하늘을 떠도는 구름과 안개와/ 땅을 흐르는 시내와 강이 한 몸이고/ 결국 산과 바다가 한통속이며/ 꼼짝없이 앉아 수만 년 세월을 지킨/ 빙하가 산의 뿌리다// 구름은 숨죽이고 산을 가리나/ 소리는 구름을 걷고 물을 드러낸다/ 물소리는 물과 다투며 달리고/ 물은 능선을 접고 굽이굽이 흐르나/ 한 번 몸을 일으킨 물은 멈추지 않는다// 산에 오를수록 영혼은 춤추고/ 물은 낮은 곳으로 깊이 스미나/ 행복은 절로 잰걸음이 아니라/ 고통의 조각들 하나하나 골라내/ 기쁨의 사다리 하늘에 놓는 것임을/ 야생의 물은 쉼 없이 흐르며 배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 물의 법이고/ 무색 무형의 물속에 사람의 길이 있다 <물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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