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

by 전종호

불러주는 이 없어도 홀로 피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절로 지지만
꽃도 이름을 부를 때 얼굴을 가진다
아무리 예뻐도 꽃이야
이름이 어디 뿌리가 되겠냐마는
사람에게 이름은 근본이다
번호로 불리면 익명의 무정이 되고
어미 아비는 뜨거운 핏줄이 되어
새끼들을 먹여 살과 뼈를 단련하고
선생이라 불리는 이들은
기꺼이 아이들을 거울에 비추고
안에서 끓는 것들의 싹을 틔워
대숲을 지나는 청량한 바람처럼
영혼들의 수풀을 흔들어야 한다
오직 분주奔走에서 벗어나
멀리 높은 산이나 황무한 땅에
스스로를 가두는 자만이
자유를 제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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