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유 32

- 분꽃

by 전종호

가진 것이라고는 한 움큼의 햇살과 앙다물고 아무리 다짐해도 것 없는 주먹과 땅거미 질 때 다가오는 원죄 같은 부끄러움뿐이었지 삶은 어둠을 뚫고 앞으로 나가는 거야 결심할 때도 주먹을 펴면 떨어지는 것은 염소똥 같은 까만 씨앗 몇 개 절망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한때의 유년은 분꽃 아래서 시작되었다 나이 들어 분꽃은 주먹을 펴라고 했지 손을 펴서 쏟아지는 한 움큼의 햇살을 나누라고 가슴속의 햇살은 나눌수록 뜨거워진다고 한 움큼의 햇살 속에 하늘과 땅과 물이 출렁이고 삶의 숨결이 윤슬의 바다로 흐르고 있다고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한 움큼의 햇살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충분했다고 저녁 분꽃이 해지는 곳으로 걸으며 말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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