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게 젊었을 적에는 노인과 바다에서
수평선의 망망茫茫에도 흔들리지 않는
팔팔한 불굴의 청년靑年을 보았으나
세월 지나 흐린 눈으로 다시 책을 읽으니
죽일 듯 넘실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다 뜯긴
물고기를 바다에 두고 잠자리에 드는 달관이 보였다
얻으면 잃는 것이 세상 이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체념을 넘어 구원은 어떻게 오시는 것인지
고요한 바다는 노인에게 가르치지 않았고
미치도록 사랑하며 한평생 바다를 오갔어도
내년 이맘때 이 바다에 다시금 올 수 있을지
노인은 울고 있는 바다에게 새삼 묻지 못했다
피는 꽃에게 지는 꽃의 운명을 묻지 않듯이
검버섯 노인도 바람 속에 살 마른 고요를 볼뿐
뼈마디를 갈아 넣은 바다의 세월을 원망하지 않았다
숨 가쁜 한바다는커녕 백사장에서도 비겁한 나는
마른 꽃잎을 달고 있는 해당화 꽃자루를 보고도
너는 붉은빛을 잃고도 왜 그리 당당한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