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하는 조건에 어긋나지 않도록
숙제나, 밤을 쫓아 피 말리는 글쓰기의 끝
머리털을 쥐어뜯는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진짜 마감이란
어둠의 한쪽을 밀어내고 빛이 비치는 찰나
이승의 끈을 놓고 피안을 건너는 첫 시간이
아닐까 몰라 또는
삶이 정말 끔찍하고 힘들어서
이유 없이 견디고 살 필요가 없어서
풀어내던 삶의 이야기 제풀에 접으며
제 발로 어둠의 입구에 들어서는 것
피투성이 염세나 허망한 우울증에
낙하의 지점이나 바위 높이를 살피거나
거친 파도에 몸을 던져 고기밥이 되거나
아아, 투신의 속도로 날아가면
이 부끄러운 삶의 흔적을 모두 지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청산할 수 있을까
불 속 또는 고속의 도로에 던져 나를 사르면
얼마나 빨리 고요의 문에 다다를 수 있을까
멀고 아득한 생각에
애쓰고 힘들어 길고 깊은 시간
알 수 없어도, 오히려 알 수 없어서
죽음의 집행을 스스로 손 까부르는
검푸른 세계에는 언제 도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