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칠년도 지나 장파리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친구는
지금도 파주 하면 진저리가 처진다고 한다
임진강 건너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매운지
보초 설 때마다 맨 정신에 귀싸대기를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최전방이 가까워 내무반의 군기는 또 얼마나 엄혹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목에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쳇말로 지금도 이쪽을 보고는 오줌도 안 눈다고 짱파리
짱파리 해 쌌는데 그건 정말 이 동네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때 모포 한 장 들고 리비교 건너 미군에게 몸 팔러 가던
이른바 모포부대 여인들의 모진 삶이 있었고
농사일로 또는 나물 캐러 갔다가 지뢰에 발목이 나갔고
지뢰 마을 발목 잘린 술주정에 성질 나빠진 여자들 밑에
먹을래야 먹을 것이 없어도 맥없이 웃어 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세계에서 지뢰 피해자 민간인이 가장 많은 나라
가장 많은 마을이 장파리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징그러워 날마다 여길 떠나고 싶어도 언젠가 고향 갈 날 기다리며
떠날 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땅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다
너야 겨우 군대살이 3년이지만 여기서 몇십 년을 견디며
돌아갈 곳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다
고래심줄 같은 목숨 사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기막힌지
한 뼘의 단심을 잊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참말로 몰라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