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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Sep 01. 2023

닭장의 변화 : 새로운 녀석들

병아리 두 마리가 더 왔다. 병아리를 가져다줄 테니 키워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극구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병아리가 온 것이다. 병아리 여덟 마리를 부화한 집이 있는데 그 집 닭장이 좁아서 키울 수 없어 키워 달라고 가져온 병아리를 자기 닭장도 좁아서 키울 수 없으니 여섯 마리는 다른 집에 보내고 두 마리를 우리 집에 가져온 것이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원픽을 잃고 가슴 아파하는 아내를 위하여 원픽과 외모가 거의 비슷한 조선닭 한 마리를 덤으로 가져왔다. 4년째 애지중지 키워오던 알 잘 낳고 모성애가 짱이라는 닭이었다. ‘얘가 병아리도 잘 돌보고 잘 키울 것’이라며 한 주먹도 안 되는 생명체 앞에서 겁내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졸지에 식구 넷에서 일곱이 되었다. 알에서 깨어난 지 일주일 된 병아리는 정말 한주먹이다. 그냥 솜털 뭉치에 불과한 것 같다. 병아리는 큰 닭과 분리하여 열흘쯤 케이지에서 따로 키우기로 했다. 볏집과 겨를 깔아 주고 먹이와 물을 넣어 주었다. 새로운 환경이 두려운 듯 병아리 두 마리가 케이지 모서리에서 숨도 못 쉬고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다. 다닐 때도 붙어 다니고 잠잘 때도 포개지듯 잔다. 그래도 우리가 보지 않을 때 먹이는 먹는지 수북하던 밥그릇의 사료는 조금씩 없어져 갔다.     


새로 온 병아리의 생존기가 눈물겹다. 있는 없는 듯, 먹는 듯 안 먹는 듯하던 놈들이 주말에 보니 밥통에 먹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남은 사료도 하나 없고, 우리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먹이를 사러 외출을 할 수도 없다. 너무 어려서 쌀알을 먹을 수도 없을 것 같아 쌀을 마늘 찧는 도구통 같은데 넣어서 갈아보았다. 안 갈린다. 그라인더에도 안 갈린다.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다른 작은 생명인 씨앗을 부수는 모순이 사는 일인지 모르겠다. 씨앗이라는 게 힘으로도 누를 수 없고 맷돌로도 안 갈린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주말에 부랴부랴 주문한 사료는 화요일이 되어서야 왔다. 갈리지 않는 쌀 대신에 병아리를 살리기 위해 누룽지를 삶아서 며칠을 먹였다.     


큰비가 며칠 와서 병아리가 있는 케이지가 온통 물 속이다. 보다못해 병아리를 박스에 넣어 방으로 데려왔다. 삐약삐약거리는 병아리의 울음소리는 생각보다 시끄러웠고 돌아다니면서 질러대는 오줌과 똥의 양은 치우기에 벅찼다. 실내에 들어와 있는 병아리들이 하는 짓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우리 행동이 우리 보기에도 어이가 없어서 동영상을 찍어 딸네 집에 보냈더니, ‘강아지는 방에서 안 키운다더니 병아리는 방에서 왜 키우지. 충격스럽네’라는 손녀의 말이 문자를 통해 돌아왔다. 강아지를 방에서 키우자는 손녀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우리 결정에 대한 대응인 듯하다. 그래, 이현아, 우리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생명 있는 것을 기른다는 것의 역시 무거운 일이야.     


선물로 온 어미 닭은 졸지에 물려간 원픽과 외모가 많이 닮았다. 잠잘 때 병아리 한 마리를 어부바하고 두 마리를 양 날갯죽지에 하나씩 끼고 자던 죽은 원픽. 그날 진돗개 습격이 떠오르는지 아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내의 상실감을 달래 주려고 기꺼이 권선생님이 새 닭을 데리고 오신 것이다. 원픽을 아주 많이 닮은 이 닭을 뉴픽이라 부르기로 했다.      


병아리 양육의 사명을 부여 받은지도 모른 채 졸지에 이주까지 당한 뉴픽이 낯선 마당에 들어섰다. 네 마리를 마주하고 뉴픽이 혼자 섰다. 이때 갑자기 하양이가 목털을 세우며 대뜸 신참자에게 덤벼든다. 헐, 맞짱을 뜨자는 것인가? 조금 먼저 왔다고 조그만한 녀석이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뉴픽이 가당찮다는 듯이 잠시 부리를 벌려 숨을 고르다가 들어오는 놈을 냅다 쪼니까 나머지 것들이 줄행랑을 친다. 혼자라도 이른바 먹은 ‘짬밥 수’가 있어 기세가 만만치 않다. 서열과 위계는 금방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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