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도 하나의 생태계라 구성원들의 들고남에 따라 새로운 파장이 일어나고, 새로운 서열과 질서에 따라 생활의 모습이 달라진다.
뉴픽이 연장자이긴 하지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보니 뉴픽도 긴장하는 느낌이 느껴진다. 부리를 벌리고 숨을 몰아쉬며 슬며시 혼자서 다니는 게 나름 조심한달까 적응한달까 하는 품이 느껴지는 것이다. 새 식구를 대하는 모습에서 기존 멤버들의 성격도 저절로 드러난다. 새 식구에 저항하는 놈도 있고 4년 넘게 산 새 식구의 관록과 권위에 금방 복종하는 놈도 있다.
뉴픽과의 첫 대면에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하양이가 목털을 세우고 대뜸 덤벼들다가 깨갱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까망이는 하양이가 뉴픽에게 다가가 덤벼들 때도 뒤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더니 하양이가 줄행랑을 치자 뉴픽에게 슬며시 다가가 친한 척을 한다. 까망이는 평소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하는 놈이다. 잔반을 주면 제자리에서 묵묵히 먹다가 큰놈에게 쪼이면 물러서고 다시 슬그머니 다가오고, 다시 쪼이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놈. 무던한 성격인가? 무던함을 넘어 친절하기까지? 1:4에서 졸지에 2:3이 됐다. 처세에 능한 놈인가 생각하다가도 약한 자의 생존법인 것 같아 씁쓸하다. 교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따로 키우던 생후 2주일이 된 병아리를 닭장에 풀어주자 제일 먼저 달려와 병아리 머리를 쪼던 놈도 하양이다. 놀란 병아리들이 하늘을 날라 도망다니는 모습을 보고 다시 병아리를 분리했다. 닭도 제각각이다. 홍성으로 이주한 이 녀석들과 한 배인 병아리 여섯 마리는 큰 닭이 제 새끼인 듯 잘 돌본다고 하고, 이선생님으로 집으로 온 거의 중닭 수준이 병아리들은 큰 닭들 속에 풀어놓자 큰 닭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목을 물어 죽였다는 것이다. 끼리끼리의 유유상종과 출입의 순서에 따른 위계와 질서는 사람의 세계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아무튼 하양이는 엄청 운동량이 많다. 잔반을 가져다주면 제일 먼저 와서 집고 일단 내빼서 다 먹고 재빠르게 달려온다. 벌레도 유독 잘 잡으며 심지어 다른 녀석이 잡은 벌레까지 빼앗아 달아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같은 날 태어난 세 마리 중 가장 살이 포실포실 올랐다. 하루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유독 하양이를 보고 ’처녀티‘가 난다고 한다. 처녀티? 사람대하듯 말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성장이 빠르고 때깔과 모양이 좋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레이와 자주 싸움질하는 놈도 하양이다. 닭들의 싸움을 자주 목격한다. 다리가 긴 그레이도 날쌘 하양이를 이겨 낼 길이 없다. 오죽하면 “아이고 얘들아 그만 싸워~”라는 말이 아내 입에 붙을 정도다. 듣거나 말거나, 말 안 듣는 건 사람과 마찬가지긴 하지만.
덤벙대는 그레이가 우리 집 개에게 물려 죽을 뻔한 사건도 엊그제 발생했다. 닭장 안에 아이들 놀라고 작은 횃대 같은 것을 놀이도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날아 울타리를 탈출한 그레이를 아침에 잠깐 풀어준 진이가 공격한 것이다. 컴퓨터 앞에 있다가 발견하고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쫓아가서 그레이의 목숨은 살려냈지만, 슬리퍼를 신고 쫓아가다 넘어져서 무르팍이 깨지고 손바닥이 벌겋게 까지고 찢어지고 난리 부르스가 난 것이다. 진돗개 기습사건에 쫓아가다 넘어진 아내의 사건이 두어 달 만에 다시 발생한 것이다. 개는 닭을 쫓고 사람은 개를 쫓아가고, 그래서 개가 닭 보듯이, 사람이 개 보듯이 하는 일이 닭장 주변에서 매일 일어난다. 말 그대로 날마다 우여곡절이다.
개에 물려 꽁지 빠진 그레이도 충격을 이겨내고 씩씩해졌다. 홍성에 왔을 때 병아리 수준이었던 아이들도 집에 온 지 거의 세 달만에 덩치는 거의 성계 수준으로 자랐다. 병아리 세 마리와 닭 두 마리가 이제 닭 다섯 마리가 되고 신참 이등병 병아리 두 마리가 전입을 온 것이다. 닭 유자 유酉 선생들의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