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친구 중에 김준호라는 분이 있다. 맞다. 부인 손심심 씨와 함께 방송에 나와서 구성진 노래도 불러주고 걸쭉한 입담으로 국민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국악인 바로 그분이다. 나는 그분을 ‘세상 모든 것의 박사님’이라고 부르는데 박사 맞다. 요새 박사들이 말과 다르게 좁은 분야를 깊이 아는 사람이라면 이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널리 아는 분이다. 페북을 보면 오만 잡다한 이야기들이 올라오는데 어찌 이 많은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또 이것들을 ‘요로크롬 재미지게’ 쓸 수 있는지 놀랄 지경이다. 김구라다. 민속학 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민속학이 잡학이요, 잡학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 친화형 주제들이 주로 이야깃거리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여섯 번에 걸쳐 페북에 쓴 글을 풀어헤치고 요약해서 하나의 글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닭요리는 백숙이나 삼계탕이었으나, 오늘날 젊은이에게 닭은 치킨이라는 튀김 요리로 인식하고 있다. 70년대 초에 ‘통째로 한 마리’라는 뜻의 ‘통닭’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양계장이 확산되면서 닭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도시에서는 월급날이면 누런 봉투에 싼 ‘전기구이통닭’을 들고 집에 가는 아버지들이 등장했다. 88 올림픽 때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를 서울에서 한다는 자부심으로 ‘닭’이라는 말 대신에 ‘치킨’이라는 말을 쓰며, ‘손에 손잡고’를 부르며 ‘양념치킨과 후라이드치킨’을 뜯었다. 기름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숯불구이 통닭’도 이때 등장했다. 오늘날 매운맛과 마늘 맛과 단맛, 간장 맛 등 온갖 오묘한 조화의 한국식 치킨이 ‘치맥’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인류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단백질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 일등공신은 닭이었다. 급기야 인류의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동물은 숭배하고 존중하는 토템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태양을 상징하는 세 발 까마귀 삼족오(三足烏)와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朱雀)이 그랬고, 마을 입구에 오리, 기러기 같은 새의 형상을 깎아 세운 솟대도 그렇고, 깃털을 꽂은 모자 조우관(鳥羽冠)도 신조(神鳥)와 관련이 있었다.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와 가락국의 김수로왕, 고구려의 고주몽 등 고대 건국 시조의 탄생에 위엄과 권위와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한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난생설화(卵生說話)는 새를 신성시했던 우리 민족의 특징이었다. 특히 삼국 중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상상의 서수(瑞獸)인 봉황과 주작을 신성시하였으나, 신라는 그보다 현실적인 닭을 더욱더 숭상했다.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는 닭 뼈와 달걀이 출토되었고, 당시 인도인은 신라를 아예 ‘닭을 귀히 여기는 나라’라고 불렀다.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계룡(鷄龍)의 옆구리에서 닭의 부리를 달고 태어났고, 경주 김 씨 왕조의 시조가 된 김알지의 탄생을 알린 것 또한 신성한 숲 속의 흰 닭 한 마리였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이 숲을 시림(始林)이라 부르다가 김알지의 탄생을 알리는 신성한 흰 닭이 울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계림(鷄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훗날 계림(鷄林)은 경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신라의 또 다른 국호가 되었다. 이 계림이라는 용어는 korea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조선 후기까지 국내외에서 꽤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서도 교회 뾰족탑 위에 쇠로 수탉을 만들어, 피뢰침 막대 끝에 붙이는 풍향 닭의 풍습이 있다. 이것도 베드로가 세 번의 수탉 울음소리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성서의 이야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회개와 새로운 새벽과 부활의 상징이었다.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도 닭은 부부의 새로운 광명을 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초례상에는 청홍 보자기에 싼 닭 두 마리를 마주 보게 올렸다. 수탉은 가정을 잘 지키라는 의미이고, 암탉은 다산의 의미였다. 무엇보다도 닭은 새벽에 큰 목청으로 울어대며, 어둠과 귀신을 내쫓고 광명의 아침을 부르고 새로서 세상을 여는 상서로운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아예 닭의 그림이 그려진 세화(歲畫)를 목판으로 인쇄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탉의 머리에 붙은 붉은 볏은 그 생김새가 관모와 비슷하여 ‘벼슬’과 통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갈망하는 조선 선비들의 출세를 불러다 주는 부적과 같았다. 과거를 공부하는 선비들의 방에는 장닭이 크게 우는 그림이나, 닭과 볏을 닮은꼴의 맨드라미(鷄冠花)를 함께 그린 그림을 붙여 입신과 출세를 기원하였다.
풍수지리에서도 닭 형국의 지세는 각별한 대명당으로 대접을 받았다. 금빛 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금계포란형(錦鷄抱卵形)’은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졌다. 계룡산(鷄龍山)이라는 이름도 조선 건국 때, 무학대사가 이 산의 형국을 보고 ‘금계포란형이요, 비룡승천형을 이룬 천하의 명산’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안동 권 씨 집성촌인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도 바로 대표적인 ‘금계포란형’의 명당이었다. 풍기읍 금계리도 예언서 정감록에서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민속에서 닭은 십이지 동물 중에서 유일한 조류이고, 또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편성과 여러 가지 특성으로 각별한 위치에 있었다. 십이지(十二支) 열두 동물 중에서 닭은 열 번째 지지인 '닭 유(酉)'에 해당하였다. 酉는 원래 술을 뜻하는 글자였다.
닭은 비록 하늘을 날지 못해도 새의 일족이었다. 그것도 빛깔이 붉고 왕관 모양의 볏과 붉은 고기수염을 달고, 깃털도 독특하고 화려한 무늬의 새였다. 닭은 전 세계의 모든 문명에서 다산, 모성, 용기, 광명 등의 종교적, 주술적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신성한 동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