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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Jan 06. 2024

1. 조재훈, 삿대울 굴참나무

시인 조재훈은 ’나의 선생님‘이십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시를 공부했고 무엇보다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그는 언제나 큰 소리 내는 법이 없었고,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의 이름은 물론, 학생들의 고향, 출신 고등학교, 친소관계를 잘 알고 계셔서 대화하다 보면 국어과 학생이 아닌 저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국어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문학회 학생들 모두의 마음속에 그의 시와 인품의 한 조각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에게서 물든 가슴 속 조각 하나를 자신의 자산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금강 유역 출신 중에서 이름을 들면 알만한 시인 작가들은 대부분 출신 대학을 불문하고 거의 선생님의 직접적, 간접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용 조용한 성품처럼 잔잔하고 서정적인 시를 주로 쓰셨습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고요한 고향 마을에 와서 어른의 말씀을 듣는 것 같습니다. 농촌과 고향과 망한 나라 백제의 정서가 진득이 묻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서정적인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교수로서 동학 연구자요, 백제와 동학을 시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 고민한 치열한 현장주의 시인이요, 공주동학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운영한 지역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80년 그 봄에 제자들이 계엄군에게 굴비 묶이듯 끌려갈 때 다른 교수들과 달리 울면서 저항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제자들의 시집에서, 다 늙어 머리카락 없는 제자들의 술자리에서 여전히 호명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갑오년 공주 우금 고개를 앞에 두고 전봉준과 동학군들이 최후의 격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새 세상을 꿈꾸는 간절한 마음이 절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는 따로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뜻을 숨기거나 비유로 무엇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경천점에서 한 무리는 이인으로, 또 한 무리는 능티고개로, 또 한 무리는 장자울 너머 우금티로 직진하도록 편대를 짠 최후의 공격입니다. 최후의 공격을 앞두고 전봉준 장군은 삿대울 굴참나무에 말을 매고 곰방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고 있습니다. ‘희뜩희뜩 저승 소식처럼 눈발’이 날리는 걸 보면 패배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길 거라고 믿고 싸운 것은 아닐 겁니다. 져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습니다. 싸워서 지고 죽어야 이기는 싸움이 동학농민군 앞에 있습니다.      


삿대울 굴참나무 허리에

말이 매었네

녹두장군님 곰방대 불 붙이고

한숨 돌리는 동안

희뜩희뜩 저승 소식처럼

눈발 날리네

장마루꺼정 서너 마장

하마루꺼정 너댓마장

이인역까지 십 리

걸어서 한 시간

경천 성재 밑에 진 치고

황토재 비사벌 휘몰아

와와 몰려온 진달래 함성

하늘땅 흔들어

예꺼정 달려서 왔네

한 패는 복룡으로 해서 이인으로 빠져나가고

한 패는 주미로 해서 우금티로 치달아 가고

산자락 감돌아 돌아가는 샛길 따라

궁궁을을 시호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죽창 들고 조선낫 들고

꿈틀꿈틀 기치창검 하늘 찌르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죄 없는 처자식 맞아 죽고

살 길은 일자무식 오직 죽는 수밖에 없는

핏빛 샛길

그 끝에 마냥 화안한 햇살이 올거나

그 끝에 도란거리는 저녁 밥상이 올거나

삼례에서 정읍에서

볏골에서, 줄포에서

강물처럼 나와 몰려드는 저 배고픔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을미적 하다가는

개벽천지 새 세상 보지 못하나니

곰배팔이도 청맹과니도

대대로 땅만 파먹던 농투사니도

밥의 평등과 밥의 자유와

땀의 미래를 믿으며 

우르릉 우르릉 천둥 되어 달려서 왔네

텃굴 건너 삿대울

굴참나무야

한오백년 살아볼거나

세상은 노상 강한 자의 편

법 없는 세상에 법이 되어

한오백년 살아볼거나

으흥으흥 말울음 들리네

매어 있는 땅울음 들리네

녹두장군님 활활 타는

푸른 눈빛 보이네

우금티 코 앞에 둔

잠 못 이루는 칼날 보이네 

 - 조재훈, 삿대울 굴참나무, <오두막 황제>, 푸른사상    

 

알다시피 농민군은 우금티를 넘지 못합니다. 농민군들의 이런 간절한 마음은 진압되고 맙니다.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고종 임금은 일본군과 결탁해서 이들을 제압합니다. 그래서 임금은 정권을 유지하고 대신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만 나라는 결국 망합니다. 일제에 의한 강점이 끝나고 해방이 되고도 동학군들이 타도하고자 했던 조병갑류의 지배세력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재벌이 되고,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관료가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저도 ’공주 동학‘을 시로 쓰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여러 번 공주를 답사했습니다. 10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나갔지만, 동학의 열망과 패배의 상채기가 아직 이 땅 여기저기에 배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내년에는 공주 동학의 일어나고 스러짐을 한 권 시집으로 묶어 내려고 합니다. 아래 시는 결국 동학군이 우금 고개를 넘지 못하고 패배한 사람의 노래입니다.      

    

오곡동 장자울에서 두리봉을 올라 

공주 아래쪽 노성 들판을 바라보면 

여기가 바로 한세상이라

마른 봄 논에 물 대 모를 심고 

허리 굽혀 김 매 가을 나락이 여물면 

들판은 황금빛 춤으로 넘실거리니

바라보는 화엄세계 저절로 배가 부른데     

썩은 정치에 통제할 수 있는 법은 없어

저 많은 쌀들이 농사꾼 입에 들지 않고

가로채어 배를 불리는 놈들은 누구인가

개집보다 못한 저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하루 두 끼 거친 밥이라도 새끼들 입에 

넣어주고 싶은 비루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니      

공맹孔孟과 성리학의 가르침은 어디에 있고

세상의 상식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바람 찬 겨울바람을 맞받으며 산마루에 올라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면 눈물이 나서

오로지 개벽 세상을 바라며 목구멍이 터져라 

심고心告하며 나팔 불던 농민군 나팔수 이하사는


일본군 양총과 신식 대포에 쓰러져

끝내 우금티 너머 새 세상을 보지 못하고

아이고 내 팔 아이고 내 다리 하며

오곡동 부화터 들에 가득 찬 동지의 시체를 

산모랭이에 모아 묻고 돌탑을 쌓아

군대처럼 올라오는 산수유 노란 봄마다

후천 개벽 꿈꾸던 벗이여 동지여 잘 가라 

장자울에 남아 뜨거운 나팔을 불었다 하네

  - 전종호, ’동학농민군 나팔수 이하사의 노래‘     

(* 오곡동 부화터 들에 ’아이고 내 팔 아이고 내 다리‘ 하며 우는 귀신의 소리가 최근까지 들렸다는 구전이 있다. 이하사 또는 이아사는 장자울에 살던 동학농민군 나팔수였다고 한다.

* 심고心告, 동학도인들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늘에 먼저 알리는 기도의식)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아름다운 말을 골라야 하는가, 시여

일하는 이는 손, 숨어 우는 아이의 눈물

억울하게 눈 감은 가슴을 떠나

말을 비틀어 무엇을 짜는가

은행 앞 플라타너스에는

새도 와서 울지 않고

버려진 애가 쓰러져 자는데

버려진 애의 건빵만도 못한

시여, 화려한 문패여

겨울 공사장 헐벗은 일꾼들이

물 말아 도시락을 비우고

둘러앉아 몸을 녹이는

모닥불만도 못한 시여, 부끄럽구나

엘리어트가 어떠니 라킹이 어쩌니

우쭐우쭐 떠들어대면서

목판의 엿 한 가락만도

못한 시를 쓰는가, 시인이여

고구마로 한겨울

끼니 이어가는 아우에게

시인이라고 자랑할 것인가

흙을 등지고, 땀을 죽이고

먹고 낮잠 자는

외래어의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또 부끄럽구나

 - 조재훈, 죄의 시     


구순을 바라보는 현직시인의 날카로운 말씀, 허명虛名에 집착하지 말고 시의 진실을 추구하라고, 시는 감정이나 말의 놀이가 아니라고, 시를 쓰기 전에 삶을 제대로 살아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파고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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