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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Jan 07. 2024

2. 김양숙, 갠지스의 저녁, <고래, 겹의 사생활>

김양숙 시인의 시집 <고래, 겹의 사생활(시와산문사, 2023)>을 펼치다가 제목에 꽂혀서 이 시를 먼저 읽었습니다. 여러 번,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갠지스라! 저는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갠지스라는 말이 주는 그 이미지와 거기에서 파급되는 의미를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상상해 보았습니다. 알다시피 갠지스는 힌두인들에게는 거룩한 물이 흐르는 성지입니다. 힌두인이라면 그 물속에 한 번 몸을 담그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합니다. 강가의 가트(계단)에서는 죽은 사람을 태우고, 태운 시신은 강물을 따라 먼바다로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시신들 옆에서 사람들은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갠지스강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서쪽 하늘에 불씨를 당기며 강에 당도하였네

가트마다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는 노을이 즐비하였네

시간에 미행당하다 남아있는 생애 대신

탐독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물결을 바라보았네     

짧게 잘린 바람이 뱃전을 흔들고

흔들수록 선명해지는 물살 대신

강에는 빈 웃음소리만 가득 흐르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몸 안에 지은 기억이라는 낡은 집 한 채

갠지스 강에 헹구어

장작불과 함께 피워 올리는

죽음의 밤이 거기 있었네

강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득 흐르네     

나는 어떠한 대답도 준비하지 못하고

아직도 첫 번째 질문 앞에 서 있네   


시인은 바로 그 현장에 가 있습니다. 그 현장에서 죽음과 삶을 관조하고 있습니다. 마침 당도한 시간에 노을이 지는 시간입니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죽음의 공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불타는 시신을 차마 보지 못하고 ‘빈 웃음소리만 가득’한 강을 보고 있습니다. 탐독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물결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죽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과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몸 안에 지은 기억이라는 낡은 집 한 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인은 ‘어떠한 대답도 준비하지 못하고/ 아직도 첫 번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갠지스강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죽음에 직면해 살고 있습니다.     


직면하되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시인은 다른 사람보다 그 촉이 발달한 사람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에 더 빨리 기뻐하고 더 빨리 더 많이 슬퍼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감응의 속도와 깊이가 다릅니다. 찌에 반응하는 물고기를 얼마나 예민하게 느끼고 잽싸게 낚아채느냐 하는 것이 낚시꾼의 실력인 것처럼, 사물이나 사건에서의 한순간의 감응感應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적절하고 공감적인 표현으로 형상화해 내느냐 하는 것이 시인의 수준이겠지요. 시인은 갠지스 강가에서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적 체험으로 승화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까지 <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 <기둥서방 길들이기>, <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라는 시집을 냈고, 고향 제주 4.3의 뼈아픈 역사를 시로 형상화하는 것이 필생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직도 못다 쓴 한 줄의 시를 위해 언어와 영혼의 비등점에 서 있다. 무뎌진 시의 날을 담금질로 벼리며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자 시를 쓰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갠지스를 거슬러 올라가면 네팔의 바그마티 강이 있고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히말라야의 수많은 작은 강과 계곡들이 있습니다. 그 계곡을 콜라라고 부릅니다. 안나푸르나에 가다 보면 만나는 히말라야호텔이라는 마을 옆에 모디콜라가 흐릅니다. 갠지스강가의 사람들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려고 하는 것처럼 모디콜라의 잠언을 듣느라 밤잠을 설치다 끄적인 시 한 편 함께 올립니다. 갠지스의 상상류에 히말라야 빙하가 있는 것처럼, 사람 머리끝 꼭대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고 사는 것이 사람의 한 생生이 아닐는지요.   


누워서도 베갯머리까지 물소리가 사납다

잠이 들자 물소리가 꿈이 되었다

이 물 저 물 다 모아 큰 강이 되리라

비탈 강 물길을 몰아 세상에 나가리라

힌두의 대지를 적시는 어미 강이 되리라

흐르고 흘러 신성한 갠지스와 만나

죄 많은 영혼을 위한 정화수가 되리라

불에 타 찢어진 피곤한 육신을 안고 

바다로 바다로 달려가리라

마침내 큰 바다 인도양에 닿아

윤회의 틀 벗고 홀로 가벼운 정신이 되리라

말을 마친 물소리가 흔들어 잠을 깨운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오늘 저 산을 오르며

눈물과 수고의 땀방울 그대에게 보탤 것이니

성내지 말고 잘 가시게 

천천히 가면서 해탈하시게 모디콜라*

- 히말라야 모디콜라, 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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