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을 경계라고 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안을 체제라고 하고 밖을 환경이라고 하는데 체제와 환경을 구분하는 선이 경계(boundary)이다. 조직이론이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생물학에서 일반체제이론을 차용하면서 사회과학 안에 자리 잡은 개념이다. 그때부터 학교를 폐쇄체제가 아니라 개방체제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폐쇄와 개방의 핵심적인 차이는 경계의 확실성과 자원의 상호교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체제는 하위체제를 가지고 있다. 교육체제를 예를 들면, 구성원의 입장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행정가, 교육청, 지역사회가 포함되고, 성격별로 보면 기간체제인 수업조직과, 행정, 재정, 인사, 시설, 설비 등 지원체제가 있다.
학교를 개방체제로 인식한 이후에도 여전히 학교 안팎을 둘러싼 경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오히려 경계가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학교 안 사정을 살펴보면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교장(감)의 경계 문제가 있고, 학교 밖 사정으로는 학교와 교육청,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 문제가 있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장외 교사집회 문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경계 설정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고.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교장, 교감에 대한 불평과 항의도 교사와 학교행정가들의 경계에 대한 역할 설정의 불명확성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부일체라는 교사와 학생 또는 학부모의 전통적인 경계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신자유주의 사조가 진전되면서 깨진 지 오래다. 교사와 학생 간의 권위적 관계가 민주적이고 교육적 관계로 전환되기도 전에 교육은 시장판이 되었다. 교육을 공공재로 인식하지 않고 소비재로 인식하는 수요자인 학부모들은 ‘손님은 왕’이라는 시장 원리에 의해서 교사들을 물건 파는 상인 취급하고, 공공 서비스를 친절하고 만족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민원인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학부모 ‘소비자’에게 양육된 학생들도 학교를, 교실을 시장의 좌판쯤으로 인식하면서 학교와 교사들의 일사일언을 문제화하고 결과적으로 교육청 전화는 민원으로 빗발치고 국민신문고는 뻔질나게 되었다. 교육 소비자들에 의해서 무너진 경계는 누가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아주 경계를 없애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서로 마음 터놓고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교사와 학교행정가들의 경계 인식과 역할 재수립도 숙제다. 교장은 교사인가? 미국에서 교장은 교사가 아니다. 독일에서는 교장은 교사다. 수석 교사다. 미국은 교장양성 코스가 따로 있어 교사가 아닌 사람을 교장으로 채용한다. 독일은 교사협의회가 학교 교사 중에서 교장을 선출하고 수석 교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교사 중에서 승진 점수가 된 사람을 뽑아 교감 연수를 시키고 교감 중에서 교장을 임명한다. 그러므로 극소수인 개방형 공모 교장을 제외하고 교사 출신만 교장을 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장은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장의 교사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교장과 교사의 경계의 벽은 어느 나라보다도 견고하다. 교장은 교사와는 다른 역할을 하는 지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 구조 속에 ‘대통령이 임명한’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일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이고 잠재적인 권력 욕망체제도 작용하고 있으리라 본다. 이런 것을 깨기 위해서 공모교장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 효과를 평가하기에 앞서 지금은 제도 자체가 거의 실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도 강고하다. 학교는 교육부 땅이지만, 교문을 나서면 모든 땅은 지방자치단체와 행정안전부 땅(영역)이다. 학생은 같은 사람이지만 학교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관할하는 부서와 법령이 각각 따로따로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자치제도가 전문직 자치를 택하고 있어서 비롯된 것인데 일반행정과 통합되어 운영하는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른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이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따로 편성되고 있어 효율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지방자치제도를 통합하자고 하면 교육계에서 맞아 죽을 수 있다. 알고나 있어야 한다, 뭐, 그런 얘기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몇 년 전부터 각 시도교육청에서 크게 벌이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마공) 운동은 좀 뜬금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체제이론을 넘어 교육생태계 담론이 힘을 받고있는 이 시대에 경계에 대한 인식과 경계의 소통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각종 정책과 운동이 무분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학교 안팎의 경계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았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경계가 경직되면 소통이 어렵고, 이완되어 교육이 민원과 사법화되면 움츠린 교사들은 적당주의나 보신주의로 퇴행하거나 학교를 탈출하려고 할 수 있다. 교사들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가 아니라 극개인주의로 분절화 될 수도 있다. 교사와 교장의 경계가 경직되어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되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아니라 교장에게 극렬하게 반대하거나 비굴하게 복종하는 문화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가 높으면 자원 순환의 동맥경화에 빠질 수 있다. 일방의 경계를 고집하는 것도, 대책 없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다만 경계가 선(線)에서 공간(空間)으로 확장해 나가지 않고는 안과 밖 모두가 존립할 수 없다. 중첩된 경계의 영역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발생하고 새로운 문화와 가능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큰 바다에는 경계가 없고, 꽃은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