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늘어진다는 것은 배배 꼬인다는 것 보였다 안보였다 출
렁거린다는 것 대책 없이 후끈 달아오른다는 것
노루는 발이 네 개
세어 보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고라닌가
강아진가
조팝나무꽃 만개하여 첩첩하니 휘눌어진
꽃가지 사이로 힐끔힐끔 또 한 마리를 이끌고
무인지경을 열고 가듯
꽁무니를 한껏 추켜 올리고
사라진
두 마리 쪽으로
사방에서 꽃벽이 우거지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 쪽 수풀은 금세 입을 닫고
이쪽 수풀은 광야처럼 허물어져서는
나그네 쪽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길은 어디에나 없는 편이 가장 좋은 것이며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들었는가 무엇을 맡았는가 무
엇을 만졌는가 어디로 가는 길이었던가
묻지 않아도 다 아는 길은 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이며,
부딪쳐서 깨어지면서 피 흘리면서 스스로 아물면서 아는 것
-'야생'일부
이향지 시인의 시집 <야생>을 읽는다. 야생野生이란 길들지 않은 날삶이다. 순치되지 않은 생명이라 세련됨이라는 틀을 거부한다. 밖의 기준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원초적 삶의 충동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지는 삶이다. 따라서 야생은 늙지 않는다. 다만 '지금'을 살다가 사라질 뿐이다.
80이 넘은 시인의 시와 삶은 놀랍게도 안주가 아니라 야생을 지향한다. 시도, 시집도 기존의 문법을 깬다. '야생'에서 "길은 어디에나 없는 편이 가장 좋은 것이며/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들었는가 무엇을 맡았는가 무엇을 만졌는가 어디로 가는 길이었던가/ 묻지 않아도 다 아는 길은 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이며,/부딪쳐서 깨어지면서 피 흘리면서 스스로 아물면서 아는 것"이라고 노래하며, 스스로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강아지인지 묻고 있지만, 나는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초식동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1) 시집은 기존의 시집 틀을 깬다. 시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따로 독립된 부部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각각 긴 시다.
2) 그의 프롤로그를 내 마음대로 편집하면 이렇다. "나에게는 병이 없습니다. 쓴다는 것이 나의 병입니다. 쓰다 만 시 살다 만 사람 먹다 만 밥 울다 만 울음 돌려주지 못한 나의 병이 있습니다. 갈증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병이 없습니다. 희망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원하는 생물인지 알게 되었으므로. 부족하나 불평하지 말고 읽어보세요.
3) 에필로그에 쓰여 있는 말이다. "'지금'은 언제나 새로 돋는 잎이다./(......) //'지금'이란 어디에도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말뚝일 뿐인데/'지금'은 언제나 에누리가 없었다/'지금'은 언제나 새로 돋아나는 잎이다./'지금' 방금 떨어져 버린 초록 잎들은 어디 있는가// 야생의 시간은 지금이다. 미래도 없고 계획도 없다. 살아 있는 지금이 야생의 시간이며 노시인의 시각은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다.
4)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집은 시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정리한 자서전적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서캐, 이, 벼룩, 빈대 같은 과거의 벌레뿐 아니라, 진드기, 꽃가루, 바이러스 같은 새로운 벌레나 균에 집중할 만큼 감각이 현대적이며, 오토 컨베이어 벨트에 걸쳐 있는 계란을 투시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이 예리하다. 가족과 관련된 옛 기억들이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이 서사이며 큰 틀에서도 내러티브 전집이다.
5) 다만 표현 방식이 남다르고 특이하다. 남이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렵다. 시에는 단순한 영탄과 회상이 없다. 시가 길다. 한 쪽짜리 시는 대 여섯 편 정도. 이야기가 풍부하다. 시적 표현들이 젊은이들 못지않은 비약이 넘쳐난다. 찬찬히 읽지 않으면 의미를 놓치기가 쉽다.
6) 마지막으로 다른 분들이 소개하지 않은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시가 이향지 시인의 주제, 표현 방식 등 작품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뭇잎보다 가벼울 것/속눈썹보다 가벼울 것/바코드가 지워지지 않게 조심하시오//모르고 과적했다/모르고 이마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나는 나뿐/ 조작하지 않았소/내 이마를 벗겨 보시우//나의 이름이 나를 모른다고 하므로/나의 가족이 나를 모른다고 하므로/내 가죽을 찢어서라도 나를 좀 찾아 주시우/ 막대기 하나가 훼손된 바코드/이 참담한/ 불변//(......) <백 년 동안의 고독> 일부
백락을 찾아가는 '말 이야기'는 시에 대한 시인의 열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선생님, 백락을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이미 천리마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