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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Jan 26. 2024

10. 류지남, ‘마을의 법칙’, <마을의 법칙, 등>

풀 하나가 살아서 

온 들녘이 푸르다

나무 한 그루가 살아서

저 산이 싱싱하다

먼 곳에 너라는 별이 있어

밤이 어둡지 않다     


풀이 하나 죽어

가을이 누렇다

나무 한 그루 넘어져

산이 어둑해진다

네가 아프다는 소식에

낮에도 내내 깜깜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온 우주가 모였다 흩어진다

사는 일도

죽어 흩어지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어디,

허튼 곳 하나 없다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마을에는 너와 나, 사람들만이 아니라, 풀과 나무, 자연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사람 사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의 마을을 사람의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을 대립적 구성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이 순환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풀 하나가 살아서 온 들녘이 푸르’고 ‘나무 한 그루가 살아서 저 산이 싱싱’합니다. ‘먼 곳에 너라는 별이 있어’ ‘밤이 어둡지 않’습니다. ‘풀이 하나 죽어’ ‘가을이 누렇’습니다. ‘나무 한 그루 넘어져’ ‘산이 어둑해’집니다. ‘네가 아프다는 소식에’ ‘낮에도 내내 깜깜’ 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이 인연의 고리에 의해 생生하고 멸滅합니다. 모든 것이 인드라망의 세계 속에 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온 우주가 모였다 흩어’집니다. 쉽고 단순한 이 시 속에 불교식 삶의 철학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시는 쉽지만, 깊은 뜻이 들어 있는 좋은 시입니다. 이런 좋은 시는 설명이나 감상평이 사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마곡사 뒷산 태화산을 등산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금강 유역에서는 그의 문학과 교육운동의 열정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합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시 사랑과 문학정신은 공주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 시비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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