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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Feb 08. 2024

모든 교육은 정치적이다

경계의 탐구 3. 교육과 정치

 심심치 않게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갈등을 둘러싼 사건이 발생한다. 교사들의 시국선언이나, 특정 정치인을 비난 또는 숭모하는 발언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사드 배치나 세월호 사건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계기 교육 또는 공동수업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쪽은 편향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정의라고 말하는 싸움은 어디서나 끊임없이 발생한다. 중립을 지키라는 주장은 자기 경계를 넘지 말라는 주장과 다름 아니다. 중립이란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경계를 좀 더 깊이 탐구해 보자.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여야”(제5조 제1항)하며, “교육은 교육의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제6조 제1항)고 규정하여 헌법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헌법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처음 명시된 것은 1962년 제5차 개정이었다.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제27조 제4항)는 조문은 1980년 제8차 개정에 “전문성”,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가 추가되고, 1987년 제9차 개정에 의하여 “대학의 자율성”이 더 추가되어 현행 헌법 조문이 완성되었다. 개정의 추이 과정이 암시하듯이, 1962년 개정이 이승만 정권의 교육 지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 보장이 삽입된 것이라면, 1980년 개정은 법률유보에 의한 전두환 정권의 교육 통제 의도가, 1987년 개정은 6월 시민혁명의 열기를 반영하여 대학 자율성 항목이 추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크게 보면 ‘정치의 교육적 중립’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교육이 국가권력이나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교육이 그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 정치 영역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안정적인 성장·발전을 위해서 교육방법과 내용이 당파적 편향성에 의하여 부당하게 침해 또는 간섭당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하여 교원과 교원단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교육에 대한 정치와 권력의 불개입을 주장하는 교육계와, 교원들의 정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한 정치계의 요구가 오랫동안 부딪혀 왔다. 같은 말이지만 주장하는 지점에 따라 강조하는 바가 달랐던 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구체적 내용은 일반적으로 교육내용의 중립성,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교육행정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숙고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서로 충돌하는 가치와 원리의 문제이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과 중립성이 충돌한다. 중립성의 내용, 방법, 범위를 누가 정해야 하는가? 외부에서 정한다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의 원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둘째, 실현 가능성의 문제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교육과정)은 과연 중립적인가? 지식은 계급적으로 결정되며, 결국 학교교육과정도 지배계층의 지식과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교육과정사회학(지식사회학)의 상식이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진공 상태인가? 학교공동체 구성원이 살고 있는 사회는 날마다 정치적 사건과 갈등이 소용돌이치는 공간인데 사회에서 분리된 교육공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셋째, 교원의 정치적 자유의 제한 문제이다. 교육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교사와 교원단체의 정치적 자유를 불허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정당한가? 정치적 자유의 지나친 제한은 공무원의 신분을 고려하더라도 과잉금지 원칙을 심각하게 어기는 것은 아닌가? 넷째, 법체계의 모순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이를 위해 교원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교육기본법상 교육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 실현과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정치적 목적 실현과 상충된다. 교원의 정치적 자유 없이 민주시민교육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중요한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문언의 맹목적인 해석보다는 법 제정의 역사적 취지를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중립을 무입장성, 무당파성, 정치와 교육의 완전한 분리, 권력 지배의 완전한 배제로 이해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실현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교원들에게 학교 밖에서까지 정치적 견해와 행동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적 동물인 시민 교사들에게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정치적이지 않은 행동은 없다. 확신 또는 편향이든지, 반대이든지 모두 정치적이다. 중립이야말로 가장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로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하는 학교행정가의 걱정과 불안도 정치적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정되는 국가교육과정은 정치적 산물이 아닌가? 정치와 교육을 현실적으로 완전하게 분리하기 어렵다면 학교 밖의 정치 문제를 그대로 가져와 교사들의 강압이나 교화 없이 초당파적으로 논쟁성을 재현하여 학생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도록, 독일식 정치교육처럼,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를 어기는 경우 교원을 제재할 수 있는 교직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말싸움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해석하기에 애매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법언에 매달리기보다는 문제해결의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부르되나 알뛰세 같은 사회학자들은 이미 학교를 진리 전달을 위한 진공의 장소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재생산되는 ‘아비투스’ 또는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 설명하고 있다. 학교가 재생산과 이데올로기 기구의 역할을 한다면, 그리고 법과 정치가 재생산 기제의 상부구조로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장하여 교육에서 정치적 활동을 배제하려는 것은 정치혐오 이데올로기를 퍼뜨려서 교육을 통한 영속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계급적 음모가 아닌가? 


우리가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신화인지, 족쇄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교육에 대한 정치의 부당한 지배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부당한 정치권력 행사에 대한 교육계의 비판과 항의를 재갈 먹이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보아야 한다. 지배와 저항 그리고 타협, 이를 위한 모든 생활과 교육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1월 13∽14일, 교육언론 [창](

https://www.educhang.co.kr)이 실시한 국민 교육현안 여론조사는 교육과 정치의 경계에 대한 선을 다시 그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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