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탐구 4
한국인에게 특히 한국 남성에게 이중성이 있다면 단연코 정치와 성(性)의 영역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와 성은 고결하고 점잖은 선비의 입에 올라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의 이면을 보면 정치와 성은 세속의 중심에서 자리 잡지 않은 때가 없었다. 세상에 초연하고자 했던 재야의 선비들도 상소와 사림을 통해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개입했으며, 엄숙한 성리학의 뒷골목에는 기방문화가 만연하였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정치와 성은 표면에서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사회화되지 못하고 쉬쉬하면서 이면에서 소비되었고, 결국 정치 불신과 혐오, 성의 무지와 왜곡으로 이어져 정치적 무능과 성범죄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치는 현대교육에서도 금기어였다.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교원들의 자발적, 능동적 정치 참여를 금지시켰다. 현실정치에 대한 교육의 발언은 봉쇄되었고 비판적인 정치 발언을 한 교사들은 퇴출되었다.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받아 교원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오랫동안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육은 항상 정치에 이용되었다. 교원들은 3선 개헌이나 유신의 홍보대사가 되어야 했으며 반상회에 나가 정부 정책을 홍보해야 했다. 국민교육헌장과 이데올로기(비판) 교육을 통해 학교는 독재 정부의 국정철학을 내면화시키고 미화하는데 앞장섰다. 날마다 ‘대통령 말씀’을 챙기고, 정부 정책을 교육과 행사에 반영하는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했다. 학교에 국민윤리와 교련 과목이 신설되었고, 국정 교과서 체제의 모든 교과 내용은 이념화되었으며 학교는 병영화되었다. 교육의 중립성은 이렇게 정부에 의해 침해되었으나 교육의 탈정치 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는 교사들의 요구는 차단되었다.
교육의 정치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정부가 교육을 정치화시키고 오염시키는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되고, 교사들이 정파적으로 행동하거나 학생들을 편향적으로 정치화시켜서도 안 된다. 특정 정파의 이슈로 학생들을 선동하고 부추기거나 조직하는 것은 교사로서 더욱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정치교육의 금지 사유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삶의 규칙을 정하는 일이며, 우리의 삶의 원리인 민주주의는, 정치 현상을 이해하고 정치적 쟁점들을 분석하여 시민적 권리와 시민성을 배우는 정치교육을 통해서 자리 잡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권력 지향성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정치를 무시하는 정치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성 때문에 정치교육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 또는 선입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정치교육은 나라마다 표현하는 용어가 다르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시민교육(civic education)으로,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민주시민성교육(EDC, education for democratic citizenship)으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국가에서는 인민교육(Volksbildnis)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하는데, 기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교육은 일상으로부터 정치를 분리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생활이 합체된 것을 전제로 “시민(학생)이 국가의 주권자로서 국가와 세계, 지역사회의 정치현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갖추어 정치적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 행위를 습득하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정치교육의 핵심은 시민권 교육과 시민성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시민은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국의 구성원이요, 주권자로서의 국민과 같은 개념이다. 시티즌십(citizenship)은 때로는 시민권으로, 때로는 시민성으로 번역되는데, 시민권은 국가나 공동체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시민성은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또는 성향을 의미하며, 정치교육은 권리로서의 시민권과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시민성을 모두 갖추도록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권위주의 교육체제에서 요구하는 ‘가만히 있으라’는 순응적인 ‘착한 국민’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을 시민 개인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 시민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주체적이고 민주적 시민을 육성하는 정치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교육의 모범으로 알려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답이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서독의 보수, 진보 진영의 정치교육자들 간의 합의로 1) 강압, 교화 금지의 원칙 2) 논쟁성의 원칙 3) 학습자 중심 원칙에 따라 정치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합의의 요점은 정치관련 교육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거나 강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여러 사회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다양하고 갈등하는 견해들을 날 것 그대로 공정하게 소개하고 학생들 스스로의 비판적 사고를 통해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정치적 상황이 다르고 정치나 사회현상에 대한 국민의 가치관이나 판단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한 나라의 제도를 다른 나라에 이식하는 것은 쉽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국가주의적 전통이 강했던 독일이 정치교육을 통해 어떻게 시민적 권리를 강화하고 세계적 모범 국가로 개조되었는지를 배우는 것은 비교교육학의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교육의 탈정치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치교육과 교육정치를 구분해서 정치교육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출생에서 무덤까지 사람의 삶에 끝없이 개입하며 삶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에 대한 이중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표리를 일치시킬 때만이 이면에 숨어 똬리 튼 미망을 깨뜨릴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