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의 사람은
지난말 시키면
말없이 고개를 들어 폭낭을 본다
살아졌다고......
세상 가장 긴 말 하나 나무에 건다
살암시민 살아졌고
살아시난 살아졌다고
사는 게 아니라 살아졌다고
목숨 붙은 것은 다만 살아진 결과라는,
살아남은 것도 살아온 것도
살아진 것이라는
살암시난 살아졌주
사난 살았주
어느 말끝에 잡혀갈지
어느 손가락이 저를 죽어지게 할지
무자 기축 그 섬
생사가 그날 운수여서
사름은 빌고 또 빌어 하루를 닫았다
오늘도 살아졌수다
- 시집 <숨비기 그늘, 삶창, 2023>에서
김형로의 시집 <숨비기 그늘>은 읽기가 참 불편합니다. 아픔 없이는 한 장을 넘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쉬지 않고 계속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한 편을 읽고 슬픔과 고통을 삭히고 그다음 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한편 한편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시집을 1부 아픔과 고통 총론, 2부 제주 4.3, 3부 광주민주항쟁, 4부 세월호 및 기타 현대사 사건 이렇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용한 시의 ‘그 섬’은 바로 제주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여행지로 가장 좋아하는 섬이 제주도이고 제주도는 바로 평화의 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제주도의 과거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이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최근까지도 제주 사람들은 자신들과 섬의 과거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까부르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어서 “지난말 시키면/ 말없이 고개를 들어 폭낭을” 그저 볼 뿐입니다. 살아 있으니 “사는 게 아니라 살아졌다고”, "살암시민(살았으면) 살아졌고/살아시난(사니까) 살아졌다"고, “살아졌다고..../.세상 가장 긴 말 하나 나무에” 걸어 놓을 뿐입니다. “어느 말끝에 잡혀갈지/ 어느 손가락이 저를 죽어지게 할지” 전전긍긍하며 “사름은 빌고 또 빌어 하루를 닫았다” 열었다 하며 살아온 세월입니다. 해방 이후 ‘4.3’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살았던 제주 사람들의 고통의 세월을 이 시를 통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의 고통은 곡哭을 꽃으로, 꽃을 곡哭으로 보고 보이는 정서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哭을 꽃으로 읽은 적 있다
한참을 그렇게 읽었다
뜻이 커졌다 오독이 은유가 되었다
그 후로 꽃을 보면 우는 것 같았다
꽃을 哭이라 한들
哭을 꽃이라 한들
꽃을 哭으로 읽으면
꽃은 세상을 위한 곡쟁이가 되고
哭을 꽃으로 읽으면
우는 세상이 환한 서천꽃밭 같다
哭을 매단 꽃
꽃을 둘린 哭
늘 흔들리는, 흔들리며 우는
사람이라는 꽃
사람이라는 哭
-김형로, '우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