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이 감정이 되고, 그것이 몸에 남는다.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29
질문
자신의 감정 상태와 신체적인 건강이나 에너지 수준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느끼나요?
“사람들은 사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두려움을 느낀다.”-에픽테토스
이 문장은 내가 감정과 신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을 받은 문장이다.
요즘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느낀다.
나의 감정 상태와 신체적인 건강,
그리고 에너지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 자체는 중립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위에 나만의 해석을 덧입힌다.
오래된 신념, 무의식적인 사고 습관, 과거의 기억들이
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판단하게 만들고,
그 판단이 곧 고통이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이 감정을 만든다.
감정은 마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감정은 곧바로 몸으로 내려오고,
에너지의 높낮이로, 무게감으로, 피로감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떠올려보면,
뉴욕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깊은 번아웃을 겪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마음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 무거워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또 왜 이 모양일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생각들이 반복되자
마음의 무게는 그대로 몸으로 전달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처럼 반응했고, 쉬어도 회복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쳐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신체 에너지를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반대로, 알아차림이 확장되면서
전혀 다른 경험도 있었다.
한 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상사를 마주한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 안고
위축되거나 상처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이것은 나의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분노 에너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의 것을 내 안으로 가져오지 않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상황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하는 선택은 무엇일까?
그 질문 끝에 나는 회피하지 않고 대화를 원하는 나를 마주했다. 그래서 차분하게 나의 입장과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담백하게 전했고, 상황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풀렸다.
그때 느꼈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에 휘말리지도 않으며,
알아차리는 순간 에너지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또한 감정을 나라고 착각하면
그 에너지에 끌려다니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면,
몸은 서서히 긴장을 풀고
에너지는 다시 순환하기 시작한다.
“감정은 바람 부는 하늘의 구름처럼 오고 간다. 의식적인 호흡이 나의 닻이다. “-틱낫한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바꾸려 애쓰지도 않는다.
다만, 허용한다.
올라오는 감정을 느끼고,
몸에 머무르게 두고,
흐르도록 둔다.
감정은 막을수록 고여서 무거워지고,
허용할수록 지나가며 가벼워진다.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마음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에너지가 흐르도록 길을 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는
언제나 하나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선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