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일까? 결핍일까?

숨기고 싶었는데 들켰네

by 마자

27살 봄


등의 절반을 덮는 긴 머리는 끝만 살짝 컬을 넣어 늘어뜨린다. 광택감이 세련된 수입원단으로 만든 블랙 공단 리본머리띠를 머리 위에 올린다. 상의는 니트소재로, 하의는 새틴 소재로 된 검정 원피스를 입는다. 허리춤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원피스로 뒷모습에 힘을 준다. 7cm 검정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그때 나는, 리본이 있어야 집을 나섰다. 크기와 위치, 개수는 향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몸 어디라도 리본이 있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꾸밈에 리본이 포함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는 리본이 달린 진한 고동색 망사 힐을 신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으로 꼬아 올려 발끝을 까닥까닥거리고 있다. 리본은 나에게 뭘까? 너 뭔데 이토록 내 곁에 오래 머무니?


생각해 본다. 나에게 리본은 선호일까 결핍일까?


촌스럽지만 여성성의 클래식한 상징인 리본이 좋은 것은 나의 선호이다. 분홍리본의 러블리함, 검정리본의 세련됨, 인형에 달린 리본의 귀여움은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럼에도 리본에 집착했던 그때의 나의 결핍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보이고 싶었다. 너는 참 사랑받고 자란 아이구나! 귀하게 공주처럼 컸구나! 아이처럼 밝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구나! 리본을 달면 그리 보일 줄 알았다. 보이고 싶은 마음의 크기에 따라 리본의 크기와 개수가 달라졌다.

커다란 리본을 올린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내리며 무심한 듯 시선을 살짝 아래로 두며 무심한 듯 보여 인간관계에 겪는 예민함과 상처를 감추었다.

빨간 리본 귀걸이를 귀에 달랑 붙여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귀 뒤로 넘기며 눈을 반달로 만들어 웃어 보이며 나를 좋아할 리 없을 거란 의심을 숨겼다.


리본을 달면 나의 그림자를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다.

7살 봄. 시장 아동복가게에서 봤어 노란 공주드레스를 갖고 싶어 아빠를 졸랐다. 타깃이 아빠였던 건 엄마에게는 그 어떤 조름도 통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엄마를 향해 뭘 졸라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한 번은 유치원 캠프가 너무 가기 싫었던 날 아침, 양말을 파는 리어카 앞에서 하얀 레이스 양말을 사주면 가겠다며 소심하지만 용기 있게 졸라본 적 있다. 엄마에게는 늘 조름보다 침묵으로 고집을 부리곤 했다. 반대로 아빠에게는 조름과 회유, 협박, 침묵 모든 방법을 다 썼던 것 같다. 아빠와 나는 몰래 둘만 집을 빠져나와 시장을 향했다. 고대하던 노란 드레스를 품에 넣고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처럼 기뻐했다. 12시가 되면 마차도 드레스도 사라졌던 신데렐라처럼 나의 노란 공주드레스는 다음 날 엄마에 의해 사라졌다. 사내아이 같은 나에게 노란 공주드레스가 가당키냐 하나며 조른 나 대신 아빠가 혼이 났다.

아직도 아동복가게가 있던 그 시장길을 지나면 벽면에 걸려있던 그 노란 드레스가 눈앞에 선명히 떠오른다. 20살 첫사랑의 미소도, 23살 가슴 시린 이별의 장면도 희미해지고 어제 감명 깊게 읽은 책의 구절도 아리송한데 망할 노란 드레스는 레모네이드만 봐도 선명하게 생각난다.


살아내기 위해 바빴던 엄마의 삶을 나는 언제나 존경하고 응원하지만, 무표정과 무반응 앞에 나는 자주 사랑이 고팠고 외로웠다. 옥상에 올라 구름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노을에게 말을 걸었던 어린 시절의 빈 마음을 리본을 채우고 싶었나 보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 모르는 척하고 싶은 나의 결핍과 마주했다면 조용히 말해주자. 원래 나는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는 존재란 것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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