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소울(soul)을 찾으러
때는 2024년 6월.
뜬금없이 곱창 쌀국수라는 것이 너무 궁금해져 버렸었다.
아마 지인이 "나 곱창 쌀국수 먹었어."라는 말을 심심찮게 했기 때문일까.
뭔데 그렇게 자주 먹는 거지?
궁금한 맛에 두어 군데에서 시도해 보다가 처참히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서울역 땀땀이었다.
여기서도 맛없으면 안 먹으련다.
일단 이곳의 곱창쌀국수는 비주얼이 매우 신기했고,
그리고 신기하게도 맛이 있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내가 곱창 쌀국수를 맛있다고 느낄 줄이야.
그리고 1년 2개월 만에, 다시 서울역을 찾았다.
점심이 거의 다 된 시간이라, 푸드코트는 만석이었다.
메뉴를 주문하기 전 자리를 잡느라 족히 다섯 바퀴는 뱅뱅 돌았던 것 같다.
때마침 일어나는 외국인 관광객 분들의 캐리어를 능숙히 피한 후, 창가 자리를 하나 골라 앉았다.
바 스툴처럼 살짝 높이감이 있는 의자라서 불편한 감은 있었다.
그래도 구 서울역사가 보이는 자리라 매우 만족.
곱창쌀국수 1단계(신라면 맵기).
한 15분 정도 걸린 후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이렇게 기름졌던가.
국물을 한 스푼 떠먹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센 맛에 살짝 당황해 버렸다.
게다가 이열치열.
뜨거운 여름에 뜨겁고 매운 것을 먹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 땀이 너무 나잖아.
그래도 복날에 삼계탕을 안 먹었으니 괜찮지 않을까?라는 이유를 장착한 채로 열심히 야금야금 쌀국수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온갖 액체를 다 쏟을 뻔했는데, 다행히 선풍기 덕에 살았다.
너무 맵고 기름져서, 절반도 못 먹고 일어서긴 했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또다시 이곳에 방문하여 이 음식을 찾겠지.
'이거 참 맛있게 먹었는데'라는 추억을 장착하고 말이다.
음식을 남긴 이유는 내가 맵찔이여서, 그리고 기름진 것을 잘 못 먹어서 그런 것이고
사실 이곳은 곱창 쌀국수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서울역 푸드코트 바로 옆에 있는 태극당에 들어가 모나카 아이스크림도 한 입 해 준다.
매운 속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나 아이스크림이 최고.
회현 지하상가로 향하다
이 날의 나들이 목표는 회현 지하상가와 명동성당이었다!
명동성당은 2023년 크리스마스 때 마지막으로 가본 곳이었고, 회현 지하상가는 초면이다.
이 지하상가는 LP의 성지라서, 희귀한 음반들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왠지 살짝 두근두근해졌다.
만약 이곳이 경험이 좋다면, 나는 추후에 의정부에 있는 음악 도서관에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현 지하상가까지 걸어갈 의욕을 한가득 품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패기 실종.
잠시 망설이다가 곧바로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 아니, 고작 1 정거장인데 지하철 타고 가는 게 맞아?
한 20분이면 갈 거리인데 대중교통을 타다니 살짝 민망하지만, 그만큼 너무 뜨거운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명동도 갈 거니까...
그리고 뚜벅이는 또 오랜만이니까.
그래, 끄덕끄덕.
지하철 타고 싶은 1인의 합리화 과정.
서울역에서 내린 뒤, 왠지 바깥으로 나가기는 망설여지고...
지하에서 회현 지하상가로 곧바로 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이 친구 말로는 여기저기 이정표가 잔뜩 있다던데, 안타깝게도 신세계 백화점은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고.
이정표는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신세계 푸드코트를 통과하여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운 좋게 회현 지하상가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다.
가운데 사진에서 보이는 쪼꼬미 에스컬레이터를 중간에 발견한다면, 거기가 맞다.
생각보다 한산했던 회현 지하상가 쇼핑센터.
마치 동대문역에서 쇼핑센터 방면으로 나가기 전에 보이는 작은 지하상가 같은 느낌이랄까.
네이버에서 검색했던 대로 곳곳에 LP 가게들이 눈에 띄기는 했으나, 다른 손님이 일절 없어서 구경하기도 살짝 민망했다.
구경이야 할 수는 있겠다만, 그 구경이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서로 뻘쭘한 상황 아니겠는가.
더구나 소상공인 생존권 보호 문구가 잔뜩 붙어 있고, 문을 닫은 가게도 많은 시점에서.
그래서 멈춰서 보는 대신, 걸으며 눈으로만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청계천이 떠오르는 중고서적 가게도 눈에 띄었다.
과거에 퇴마록을 사기 위해 커다란 백팩을 메고 청계천 헌책방 가게들을 훑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알라딘 중고서점이 너무 잘 되어 있으나 과거에는 곰팡내가 폴폴 풍기는 중고 책방들을 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알라딘처럼 깔끔하진 않지만, 이것도 나름의 멋 아닐까.
그리고 사실 나는 청계천 중고 책방을 은근히 좋아했다.
그곳에서 풍기는 다락방 같은 퀴퀴한 아늑함이 매력이었던 것 같다.
손님이 계시는 매장 한 군데를 발견하여, 조심스레 LP판을 훑어보았다.
저렴한 것은 3만 원대, 비싼 것은 30만 원을 훌쩍 넘는 것도 있었다.
물론 더 값어치 있는 것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LP판도 두어 장 사서 들어 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음, 어디까지나 로망.
생각보다 지하상가 구경이 빨리 끝나 버려서 아쉽지만, 다음 장소로 향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명동, 그리고 명동 성당
파라솔 아래에서 남산 타워 방면을 보며 한 장 찰칵.
약간의 TMI를 살포시 살포해 보자면,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내가 좋아하는 문구샵 '더타임 남산'이 나온다.
무언가 하나는 반드시 사게 되는, 트래블러스 노트 유저들을 위한 마성의 공간이랄까.
이 날은 과감히 패스.
방향을 살짝 틀어 명동으로 향한다.
나는 종로쟁이라서 명동 거리를 걸어본 기억은 그렇게까지 많진 않다.
호객행위로 불편했던 과거의 명동과는 달리, 현재의 명동 거리는 외국인들만 있는 살짝 한산한 분위기로 변해 있는 느낌이었다.
낯익은 것 같기도, 낯선 것 같기도 한 묘한 풍경.
서울인데 왠지 일본에 있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 왜였을까.
그래도 둘러보면, 곳곳에 아주 살짝씩 추억이 배어 있기도 했다.
뭐 예를 들면, 과거에 남자친구랑 걸었던 적 있는 저 오르막이라던가.
그 과정에 음료수를 샀던 CU편의점이라던가.
하나의 작은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부르고, 그 와중에 복잡히 얽히고 얽힌 안 좋은 기억들도 딸려 올라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과거의 기억은 여기서 차단.
가위질 싹둑.
계단 오를 생각에 살짝 걱정을 하고 있던 와중에 눈에 띈 반가운 이정표 하나.
원래 명동성당을 이렇게 갈 수 있던 거였어?
엘리베이터까지 있으면 진짜 너무 감사하겠다 - 애정을 듬뿍 담아 이정표를 한 컷 찍어 보았다.
왠지 한 번쯤 구경해 줘야 할 것 같은 작은 서점은 못 참지.
왠지 찍어 보고 싶어서 한 컷.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3층 가는 버튼은 입구 반대편에 붙어 있으니 주의!
이걸 몰라서 처음에 1층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나오니 이렇게 야외 공간이 펼쳐진다.
볼 때마다 오징어가 떠오르는 접힌 파라솔.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말구유가 놓여 있었던 자리는 다른 디자인의 조형물이 전입신고를 한 모양이다.
아마 크리스마스 때에는 다른 작품으로 바뀌겠지.
엘리베이터로 편하게 명동 성당을 올라올 수 있다니 참 좋다.
가만 보니 안쪽을 구경할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길래, 잠시 들어가 보았다.
조용히 뒤에 서서 둘러보고 있는데 다른 분들께서 다 사진을 찍으시기에 나도 한 컷 담아 본다.
혹시 찍으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기도 하시는 분들께 방해가 되지 않게 아주 잠시만 분위기를 느낀 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명동에서 찾은 카페, 더 스팟 패뷸러스
네이버 지도에 추가해 두었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어디지' 생각했던 지점도, 알고 보면 참 익숙한 길인데.
두리번거리며 조금만 헤매면 바로 찾을 수 있는 길인데
요즘의 나는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탓인지, 아는 길도 지도를 보며 찾아가곤 한다.
이것은 신중함일까, 아니면 나이 먹음 일까.
알고 보니 이 카페는 내가 지나다니며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디저트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더 스팟 패뷸러스.
저 유니콘 간판이 인상적이었는데, 거기가 여기였군.
치즈케이크가 정말 맛있다는데, 그러면 먹어 줘야지.
아메리카노 한 잔과 라즈베리 시럽 같은 것이 뿌려진 치즈 케이크를 택했다.
한켠에서는 굿즈도 팔고 있다.
1층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결제한 후 디저트를 먼저 받고, 2층으로 올라가 직원 분께 영수증을 인증하면 그 층에서 음료를 제조해 주신다.
산미가 있는 아메리카노에 산미가 있는 치즈케이크를 먹으려니 몸이 찌릿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디저트는 내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 박물관에서 커피를 마시는 느낌.
커피와 디저트의 맛이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혹시 티라미수 같은 것을 먹었으면 나았을까.
짧은 나들이였지만 그래도 꽤 알차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