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는 뚜벅뚜벅_공항철도 타고 영종도 바다 나들이

공항철도야, 사랑해

by Peach못한

사실 얼마 전 블로그를 새로 만들었다.

그동안 쟁여두기만 한 이야깃거리를 블로그에 하나하나 올리고 있는데, 덕분에 브런치 매거진에 영종도 다녀온 이야기를 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음?)

그래서 떠오른 김에 풀어 보는, 살짝 열기가 식어 미적지근해진 여름 바다 이야기.

때마침 여름의 열기도 한풀 꺾였으니, 미적지근한 날씨와 미적지근해진 기억의 조합이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


,

스타트.



공항철도는 공항만 가는 게 아녀


그동안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을 가거나 공항을 가거나.

거의 이름에 충실한 용도로만 탑승해 왔던 고지식한 어른 한 명은, 어느 늦여름 뜬금없이 새벽 감성에 휩싸여 버렸다 : 공항 철도 노선 중, 공항과 공항 사이에는 대체 무슨 역이 있는 걸까.

이런 걸 이제야 궁금해하다니, 역시 새벽은 모든 것이 흥미로운 시간이다.


김포공항 - 계양 - 검암 - 청라 - 영종 - 운서


예?

영종?

영종도 거기요?


센치한데 새벽잠마저도 없는 성인은, 잠시 네이버 검색을 해본 후 바로 나설 채비를 하고야 말았다.

와 영종역 거기가 바다 영종도 거기라니.


그리하여 오전 7시, 공항 철도를 타고 내린 곳은 바로 영종역.

문이 열렸는데 딱히 내리는 사람도 없는, 일요일의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었다.

역에서 혼자 내리면 장점이 있다 : 전세 낸 듯한 계단.


이미 '뚜벅이는 뚜벅뚜벅'에서 여러 번 밝힌 TMI이지만, 나는 계단 공포증이 있다.

안 그래도 무서운 계단인데, 뒤에서 누가 바삐 따라 올라오고 있으면 마음까지 다급해며 혼자만의 대결을 하고야 만다 : 심장 박동을 담보로 펼쳐지는 스피드 게임.

(통은 그것을 공포라 부른다.)


하지만 이 날은 아무도 함께 내리지 않았다.

말인즉슨 - 계단만 보면 쪼그라드는 나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 놓고 계단을 쉬엄쉬엄 찬찬히 올라가도 된다는 뜻이다.


아 - 좋아라.

이런 걸 보면 행복이란 별 거 없다.


처음 뵙는 기념으로 영종역 증명사진 한 장.

건물 가운데를 ktx가 질주하는 듯한 강렬한 모습이 연상된다.


영종역 건너편에서 203번 버스를 타고 22개 정거장을 가면 영종 선착장 입구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는데, 여기서 10분 정도만 더 걸으면 영종진 해변에 도착할 수 있다.


사실, 영종도 저 끝자락에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을 가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을왕리 해수욕장은 영종역에서도 교통수단으로 50분 걸리는 먼 거리였고, 도보로는 자그마치 5시간어치.

물론 이 거리를 걸어갈 건 아니지만, 왠지 뚜벅이 특성상 이동 거리가 (도보 기준) 2시간 이상이면 살짝 지쳐 버리는 감이 있다.

'여차하면 걷지 뭐'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탑재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고른 곳은 영종진 해변.

이곳은 도보로 간다 해도 1시간 3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하여 203번 버스를 타고 22 정거장을 간 뒤 영종 선착장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영종진 해변의 아침 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여기는 너무 친숙한 곳이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나는 과거 몇 년간 누군가와 함께 이곳에 자주 왔음을.


그때는 차량으로 이동했기에 른 루트를 이용했고, 목적지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채로 '이동당하기'를 여러 번 겪었었다.

살짝 당혹스럽지만, 여하튼 나는 이곳을 꽤나 자주 왔었다.


오.

이렇게도 올 수 있는 거였구나.


그리고 내 기억에 따르자면, 그와는 영종진 해변을 걸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나름 '기억 덮어쓰기'라는 첫 삽을 뜨기에 최적 아니겠는가.


영종진 해변의 아침 바다를 슬쩍 보는 것으로 상쾌한 일정을 시작해 본다.

여름철 뜨거운 바다의 내음이 물씬 풍겨서, 후각이 예민한 나로서는 사실 좀 힘든 상황이었다.


해변을 잠시 걸으며 후각에 뺏겼던 정신줄을 붙들고, 누군가에게 모닝 문자를 한 건 전송한 후,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관광지에 가면 나는 거의 편의점을 애용하는 편이긴 하다.

관광지는 대체적으로 혼밥족을 싫어하니까 말이다.


라면에 삼각 김밥을 먹고 싶었다만, 피치 못한 사정(삼각 김밥 재고 없음)으로 인하여 감동란으로 대체.


간만에 먹어보는 김치라면은 시큼했다.

신 맛을 짭조름한 계란으로, 단짠이 아닌 신짠을 시도해 본다.


신짠.

그러고 보니 감동란의 저 동그란 모양은 짱구의 댕그란 눈동자 같기도 하다.

짱구 만화를 싫어하지만, 신짱구라는 캐릭터는 참 독보적인 것 같다.

눈동자만 봐도 짱구라는 느낌이 딱 드니 말이다.

- 여하튼 호로록.


모닝 라면은 위장을 깨우기에 참 좋다.

아침에 밀가루를 먹으면, 위장은 하루 내내 정말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살짝 변태 같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위장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면 살아있다는 게 실감이 나곤 한다.



영종진 씨사이드 파크


저작 운동을 마치고 배를 든든히 채워 소화 효소를 호출해 낸 나는, 영종진 해변 바로 옆에 있는 씨사이드 파크로 향해 본다.


추모비도 있고 작은 정자도 있는 영종진 씨사이드 파크는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다.

더 멋진 풍경을 담고 싶다.

내가 가진 핸드폰의 카메라는 스펙이 좋지 않아 나들이를 할 때마다 늘 아쉽다.


씨사이드파크는 주말에 가족 방문객이 많은데 여러 가지 액티비티를 즐기기도 한다더라.

하지만 한 바퀴 가벼이 휭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다.


올라갈 수 있게 생긴 작은 정자는, 살짝 변태 같은 각도에서 찍어 보기.


산책 중 네모난 구멍 사이로 보이는 바다도 한 번 좋아하며 찍어 보기.

솔직히 요런 거 한 번쯤 찍고 싶잖아요.

아닌가.

나만 그래요?


암튼.


하도 들고 다녀 분신과도 같아진 트래블러스 노트도 광합성.

이제 슬쩍 푸른 하늘이 보여 반가웠으나, 보기와 달리 해는 제법 뜨거웠고 공기는 매우 후끈했었다.


계단을 올라 정자 위쪽으로 올라와 보았다.

이곳은 바람이 매우 시원하게 불어서, 흐르던 땀방울이 급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탈수와 건조가 동시에 되는, 시원한 세탁기 안에 들어 있는 빨래 같은 느낌.

선조들이 여름철 되면 정자에 누워서 시조를 읊으며 하루를 보내셨는가 알 것 같았다.


비록 칸막이 때문에 뷰가 예쁘지는 않았지만, 한결 뽀송해진 세탁물 상태로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음이 황송했다.


영종 역사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주친 야외무대 (라고 쓰고 난간 없는 계단이라 부른다) 한 컷.


영종 역사관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은 오전 9시 10분.

50분을 기다려 역사관을 들어가느냐, 아니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느냐.

잠시 고민 끝에 발길을 돌렸다.

목도 많이 마르고 앉을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종도는 다음에 또 오면 되는 거니까, 그때 들르지 뭐.


인사동에서 구입한 손수건, 그리고 편의점에서 1+1 쌍둥이로 데려온 이온 음료.

바닥났던 기력을 채우는 데에는 이 친구들의 공이 컸다.


고마워, 동물 친구들.



구읍뱃터 산책


예전에 '뚜벅이는 뚜벅뚜벅' 매거진에 월미도 다녀온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실 영종도행 배를 한 번 타 보려고 했었다.

시간의 압박으로 타질 못해서 아쉬웠었고, 도착지가 너무 궁금했었는데.

그게 여기였구나 - 드디어 궁금증이 풀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기억을 소환해 보니, 나는 이곳에 매우 자주 왔었다.

차를 주차하던 공영 주차장도 보이고, 밥 사 먹은 곳, 줄 서서 먹던 소금빵 맛집도 보이고.

그 사람과 자주 왔던 곳은 구읍뱃터였음이 증명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조각조각 흩어졌던 기억 파편을 하나하나 맞춰 가게 되었던 영종도 나들이.


기억은 기억이고, 여름 바다의 냄새 어쩔.


부패할 만한 무언가가 많이 존재하는 여름철 뜨거운 바다.

이 날 나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구읍뱃터는 가을 이후부터 오리라.

나의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개구리 사진을 한 번 올려 본다.


영종 역사관에서 구읍뱃터로 걸어온 이유는 딱 하나 - 바다를 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이곳의 오픈 시간 또한 아침 10시.


때마침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호흡이 가능한 공기 순환 장치가 두 개 있다.

인간이여, 코를 잠그고 입을 열자.


대략 30분간 멍하니 바다를 보며 생각도 하고, 글도 조금 쓰고, 피크민 모종과 엽서도 수집하고.

나름 이것저것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오전 10시를 맞이할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영종도 카페


오전 10시.

카페 오픈런.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과 함께 휘낭시에도 주문해 보았다.

설정샷을 위해 다시 호출된 다이어리.

나름 이 친구도 극한 직업인 것 같다, 주인 취향 맞추느라 한쪽 귀에 피어싱도 해야 하고.


직접 보는 바다와 카페에서 보는 바다는 다르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들러본 카페였는데, 생각보다 기분 전환이 많이 되었다.

다만 기력이 떨어져서 문제.


원래는 한 정거장 떨어진 청라 쪽도 돌아보고 싶었는데, 컨디션 저하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시 공항 철도에 몸을 싣는 것으로 짧은 나들이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뚜벅이가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바다' 하면 월미도 한 군데밖에 안 떠올랐는데, 다른 곳을 찾아낼 수 있어 좋았다.

다음번에는 날을 잡고 을왕리에 가 보고 싶다.

사람이... 많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뚜벅이는 뚜벅뚜벅_올림픽공원과 보라매공원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