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_빵 두 개와 함께

D 카페에서

by Peach못한
첫 대전

아주 싸늘하지도, 그렇다고 포근하지도 않은 2025년 12월 한복판의 어느 날.

대전에 갔더랍니다.


대전 하면 특정 빵집이 굉장히 유명하지요.

사실 그 빵집에 갈 마음은 딱히 없었습니다.

빵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 줄 선 것이 살짝 억울해서 생각보다 빵을 조금 더 사게 될 것 같고, 그러면 열차에 들고 타기 번거로울 것 같고, 냉동실에 빵을 쟁여둘 공간도 딱히 없고, 설상가상 빵에 냄새 배는 것은 또 너무 싫고.


그런데 1박 2일 계획을 잡아 내려간 대전에 생각보다 볼 것이 많지 않아 살짝 당황했달까요.

결국 이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가려고 갔다기보다는, 체크인했던 숙소 냄새가 다소 심해서 30분 만에 도망치듯 나온 곳이 이 빵집이었습니다.


평일 저녁이었기에 30분 정도만 웨이팅을 하고 들어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말에는 1시간 넘게 줄을 서기도 한다네요.

줄을 서 계시는 분들의 과반수는 민트색 케이크 박스를 들고 서 계셨습니다.

순간 '나도 저걸 사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냉동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네이버를 이용하여 이곳의 유명한 빵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부추가 들어간 빵, 바삭하게 튀긴 빵, 명란이 들어간 빵, 어떤 산 이름이 들어간 빵 등이 인기 리스트에 올라 있더군요.

그중에 궁금했던 것 두 개를 골라 담았습니다.

트레이를 들고 계산줄에 서 있는데, 제 뒤에서 "현지인인가 봐"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마터면 뒤돌아서 '대전이 초면'이라고 응답하여 무안함을 줄 뻔했어요.

슬기롭게 잘 참아냈습니다.


근처에 구입한 빵을 먹고 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리로 향했습니다.


12월인 데다가, 크리스마스 데코에 맞춰 반짝반짝.

살짝 눈이 돌아갈 뻔했던 굿즈들을 슬기롭게 지나친 후, 혼자 앉아도 괜찮을 법한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빵과 아메리카노


왠지 옛날 분위기 나는 트레이와 접시, 포크와 나이프.

그러고 보면 1970~1980년대에는 빵집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다고 하지요.

그 시절에 데이트하던 사람은 아닙니다만, 왠지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 즉, 안 겪어 놓고 겪은 척하는 1인.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보았습니다.

구매한 빵 중 하나가 너무 치명적으로 달달해 보였거든요.

음료까지 단 것을 주문하면, 제 혀가 거친 욕을 해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불면증에 시달릴 제 뇌가 욕할 것도 고려했어야 했는데, 당시 생각이 조금 짧았습니다.


부추가 들어간 빵.

그리고 초코가 단단히 덮인 빵.

씁쓸한 아메리카노와 질겅이는 부추의 조합은 마치 명절에 푸석한 부추전을 부쳐서 커피랑 먹는 느낌이었어요.

먹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그래, 이게 여행이지.'

이 생각이 왜 이 타이밍에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카페에 가면 종종 케이크를 곁들여 먹곤 합니다.

조각 케이크가 가격이 사악해서 그렇지, 가끔 먹으면 맛있긴 하거든요.

Cheese Cake Only였던 순간도 있었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쇼콜라를 먹던 때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는 버터크림 케이크가 니글거려서 크림을 다 걷어 내고 빵만 먹곤 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크림 저항감이 조금 사라지게 되었네요.

그 이후로는 얼그레이 크림 케이크라던가, 생크림 케이크도 먹게 되었지요.

지금의 최애는 생크림 딸기 케이크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어요.

물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 올망졸망 커플들의 달가닥거리는 나이프와 포크 소리, 고풍스러운 하얀 접시.

쌉싸름한 커피의 조합이 왠지 1980년대 경양식집에 온 느낌이 들기도 했던 -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갔던 경험을 주었던 대전에서의 저녁.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희석되니,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이래서 기억은 묵혀놓고 봐야 하는가 봐요.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다음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와 보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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