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혼밥 레벨은 몇 점인가요
아침의 연남동을 간 적이 있던가
평소보다 잠이 조금 일찍 깬 날.
침대에 누워 물끄러미 생각해 보았다.
'아침 일찍 연남동을 가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의 뒤통수를 긁적긁적.
손톱의 자극에 일어난 거스러미들을 찬찬히 훑어보았으나 아침나절의 연남동은 거기에 없었다.
아침의 기온, 영하 2도.
쌀쌀하긴 하지만 굳이 못 걸을 것도 없는 기온.
'그래, 가자.'
어느샌가 필수품이 되어 버린 털모자로 머리카락을 덮은 채 집에서 나섰다.
모닝커피 한 잔
약간의 시간이 흘러 도착한 연남동.
구입한 원두 한 팩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터벅터벅 길을 걸어 본다.
분명 전날 밤 번잡했을 연남동은 이른 아침 안갯속에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나는 연남동 길을 걸으며 자유를 만끽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냥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 했었다 - 키가 작은 내가 사람들 틈바구니에 묻혀 있어도 티가 나지 않는 곳, 마스크에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다녀도 절대 튀지 않는 곳.
그게 홍대였고, 그 와중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곳이 연남동이었다.
하지만 연남동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곳은 따로 있다 - 주택가 부근.
상가가 있는 곳은 아무래도 정신이 없다 ㅠ
이곳을 걷는 것은 오로지, 아침이어서 가능한 것.
간밤에 잠을 설친 듯한 모나리자 앞에서 주지도 못할 커피를 들이밀고 한 컷 찍어 본다.
이것은 카페인을 가진 자의, 한 잔의 여유.
일명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 경의선 숲길로 향했다.
돌벤치에 자리를 잡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하나 꺼냈다.
커피랑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집에서 챙겨 온 것.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하다
추운 날씨이지만, 연트럴파크에서 아침 조깅을 즐기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보스턴 항구 근처에서 아침 조깅을 하는 백인의 여성 분들이 오버랩 되는 한편,
조깅하는 분들을 바라보며 간식을 뜯으려 부스럭거리는 내가 적나라하게 대비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보스턴에서도... 조깅 하시는 분들을 보며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칼로리를 태우시는 분을 바라보며 칼로리를 섭취하는 1인.
나는 어느 곳에서든, 주로 섭취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살을 빼면 지구가 균형을 잃을지도 몰라.'
그러니 나는 지금 지구를 위해 - 우주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는 중이다.
음.
... 그런데, 이 생각이 성립하려면 나는 앞으로 절대 몸무게가 늘어서도 안 된다.
뽀시락거리며 간식을 먹고 있자니,
아주 예전부터 유행하던 혼밥 레벨 체크 테스트가 떠올랐다.
'당신의 혼밥 레벨은 몇 단계인가요'
1단계가 편의점, 2단계가 푸드코트, 3단계가 햄버거...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혼밥 레벨 테스트표의 마지막 단계가 아마 혼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술을 먹지 않으므로 최고점을 찍지는 못했다.
고깃집도 사실은 가 보지 못했다, 2인분을 시켜야 하는데 그 느끼한 고기를 2인분을 먹을 자신이 없어서.
혼자 회를 먹으러 가본 적은 몇 번 있다 - 지금은 안 가지만, 광장시장에서 1만 원을 내면 모둠회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사실 혼밥을 해도 자유로운 지역이 있고, 아닌 지역이 정해져 있다시피 하니까
눈치껏 굶거나 편의점을 이용하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혼밥 비율은 점점 늘어난다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눈칫밥과 혼밥을 함께 먹어야 하고, 그러는 날은 꼭 체하기 일쑤다.
아마 나도 온전히 사람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요즘의 놀이터
어느새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며, 내친김에 연남동의 놀이터도 한 번 가 보았다.
이거는...
... 뭐 하고 노는 건가요.
구멍으로 모래를 집어넣고 빠져나오는 것을 구경하는 건가.
갸우뚱.
어렸을 적 리어카에서 100원 내고 타야 했던 - 흔들리는 말.
요즘의 놀이터에는 기본으로 세팅이 되어 있는가 보다.
내가 어렸을 적 놀이터는 전부 흙바닥이었었는데 요즘은 참 깔끔하게도 되어 있다.
넘어져 다쳤을 때 아픈 것은 어느 쪽일까, 흙바닥 vs 정제된(?) 바닥.
...
왠지 다치지도 않은 무릎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탈탈 저어냈다.
어느 바닥이건 간에 다치는 것은 많이 아프다.
시소인 것 같은데 무언가 업그레이드된 느낌.
손으로 움직여 보았더니 기구가 꿈틀꿈틀한다.
그 모습이 마치 자벌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다시금 고개를 탈탈.
확실히 나는 요즘 놀이터 세대가 아닌 터라, 이곳의 생태계를 잘 모르겠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의 어른들도 그러셨겠지.
놀이터 벤치에 가만 앉아, 아이들이 놀 법한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혼자서도 참 잘 논다, 뭔지 모를 것에 몰두해 가면서.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 그때의 나는 집중력이 좋았던 걸까 시야가 좁았던 걸까.
지금의 나는 주변을 넓게 보는 걸까, 생각의 깊이가 얕아진 걸까.
식어 버린 커피와 식지 않는 생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커피를 다 마시고 쓰레기통에 테이크아웃 잔을 버린 뒤 집으로 향했다.
거창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혼자인 내 모습을 찬찬히 떠올려 볼 수 있었던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