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산책
연희동으로 향하다
요즘은 생각 정리를 하고 싶을 때 연남동을 종종 걷는 편인데, 생각해 보니 연희동을 산책 코스로 삼은 적이 딱히 없었다.
작년 가을에 지인 분과 와펜 가게인 '옵젵상가'만 잠깐 들렀다가 바로 귀가했던 것 같은데.
그때 그곳에서 와펜을 사지는 않았지만 맘에 드는 것이 몇 개 있었던 터라, 이번에 모자에 붙일 와펜을 사러 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을 먹은 김에 연희동 볼거리도 검색해 보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연희동을 가려면 홍대입구역 3번 (연남동 경의선 숲길 쪽) 출구로 나온 뒤 2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걸어가는 길이 살짝 지루했는데, 아예 연남동 구경을 하다가 굴다리를 통해 연희동으로 건너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나는 만동제과와 작은 연필가게 흑심이 있는 대로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슥 지나치다가 '여기었던가?' 싶어 바라본 곳이 바로 사러가 쇼핑센터.
혹시 여기가 후문이었던 건지. 눈에 띄는 간판이 딱히 보이지는 않았다.
사러가 쇼핑센터
이 건물 2층에 와펜을 파는 '옵젵상가'가 있으나 이곳은 12시에 오픈.
도착한 시간이 살짝 이르기에 1층에 있는 사러가 마트를 구경하기로 했다.
마트 앞쪽 공간에는 이렇게 작은 매대 같은 것이 여러 곳 있다.
잡화들과 함께 일본어가 적힌 과자들이 툭툭 진열되어 있어 궁금한데, 각을 잡고 구경을 하기에는 너무 아무도 없어 소심해져 버렸다.
맛있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열정적으로 과자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라. 사실 저 과자들이 뭔 맛인 지 잘 모르겠다.
과거에 일본에 여러 번 갔을 때도 치즈포와 곤약 젤리 정도만 캐리어에 담아 왔고.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오리히로 곤약 젤리가 있는지 찾아볼 걸 그랬다.
꼭 이렇게 벗어나고 나야 '아 맞다, 이거 해볼 걸'이라는 생각이 대뇌를 점령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픈 마음보다는 '에이 뭐 하러' 하는 냉소적인 마음이 더욱 큰 영역을 차지한다.
특히 그것이 나의 만족감을 위한 욕구일 때는 더더욱.
그래서 다시 곤약 젤리를 사러 이곳에 방문할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일단 사러가 마트 진입.
연희동 사러가 마트는 1965년부터 운영되었다고 하니, 꽤 역사가 깊다.
아주 크지는 않은 규모인데, 들어가면 신기한 식재료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진열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두리안.
작은 사이즈는 65,000원이고 큰 사이즈는 78,000원.
예전부터 나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참 궁금했다.
맛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냄새 때문에.
호텔에서 두리안 껍질을 깠다가 벌금을 냈다는 글도 심심찮게 보았는데, 대체 얼마나 독하기에 벌금을 물까.
그런데 이 녀석이 한국 마트에 버젓이 누워 있다고?
대체 너희들은 비행기를 어떻게 탄 거니?
검색을 해 보니 두리안은 위탁수화물로만 비행기 반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엄청 꽁꽁꽁꽁 싸맨 다음에.
이 녀석들도 아마 그렇게 한국 땅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태국에서 두리안은 1kg 7,000~8,000원 정도 하는 것 같은데, 두리안을 깠을 때 내는 벌금 20만 원을 따져 놓고 보면.
한국 땅에서 65,000원을 주고 두리안을 사는 건 어찌 보면 이득일 지도...?
근데 집에 배어버리는 냄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있다가 발길을 옮겼다.
단지 냄새가 궁금해서 저 돈을 주고 사기에는 너무 위험요소가 크다, 먹어줄 사람도 없고.
악취 때문이라면 후각이 예민한 나로서는 더더욱 곤란해진다.
그런데 tmi를 풀어 보자면, 나에게는 살짝 변태적(?)인 성향이 있다.
"와 이거 진짜 맛있어."라고 하면 절대 안 먹는다.
"와 씨, 이거 무슨 맛이야?!"라고 하면 궁금해져서 한 숟갈 먹어보고, 맛이 드럽게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희한한 사람이다.
두리안이 아마 드럽게 맛없는 걸로 유명한 과일이었으면 너무 궁금해서 저 녀석을 샀을 수도 있겠다.
다음번에 너무 궁금해지면 정줄 놓고 구매해 볼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이 날은 아니었다.
이름만 많이 들어본 노루궁뎅이 버섯과 식용 꽃들.
그리고 허브들도 눈에 띈다.
딜 향이 참 좋다던데. 만지작...
사러가 쇼핑센터에 가면 약과를 반드시 사야 한다는데, 내가 떠올린 약과와는 질감이 매우 달라 보였다.
살짝 파삭할 것만 같은 비주얼이랄까. 맛탕 같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날 약과를 들고 돌아다니면 찐득해질 것은 뻔하기에, 이 친구들도 다음을 기약해 본다.
연희동 옵젵상가
사러가 마트는 볼 만큼 다 돌아보았기에, 2층에 있는 옵젵상가로 향했다.
시계 매장과 안경 매장, 아리따움 등도 2층에 입점해 있다.
마트를 몇 바퀴 돌기가 애매해서 좀 일찍 올라가 본 건데 (조명이 켜져 있길래) 아직 오픈 전이었다.
2층을 구경하며 잠시 기다렸다.
12시가 되어 입장.
사장님께 매장 내부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여쭈어 보고, 허락을 받은 후 내부를 찍어 보았다.
지난가을에 다녀간 그 모습 그대로.
이곳은 가방, 키링, 장갑 등 다양한 소품을 먼저 고른 후 그 소품을 꾸밀 와펜들을 골라 함께 계산하면 된다.
매장에 계시는 사장님께서 직접 다리미를 이용해 붙여 주신다.
물론 와펜만 사도 된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자에 와펜을 달아 장식할 예정이었기에 와펜만 고르기로 했다.
그때 보았던 귀여운 와펜.
종류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니, 추가되는 디자인은 없는 모양이다.
엄청 자제하면서 골랐는데 1만 원이 넘어서 순간 당황.
모자에 와펜을 부착하는 법을 여쭈어 본 후,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스팀다리미나 고데기로도 가능하다고 하기에 - 며칠 전 구매한 고데기로 이 녀석들을 붙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장미가 필 무렵에 연희동을 왔더라면, 참 예뻤겠다.
연남동과는 다르게 널찍하고 한적한 맛이 있다.
그리고 매우 조용하고 또 조용하고, 심지어 조용하기까지 하다.
그 맛에 오히려 연희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과거에 연희동 집을 잠깐 알아본 적이 있다.
일단은 비싸고 - 그 시절에는 향신료 냄새가 강해서 힘들다 느꼈는데, 사러가 쇼핑센터 뒤쪽으로 이렇게 한적한 곳이 나올 줄은 몰랐다.
만약 그때 이 거리를 걸어 보았더라면, 동네를 고르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까? 괜히 궁금해졌다.
연희동 독립서점으로 유명한 '유어마인드'.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 건물 2층에 있는데.
오우, 계단.
나는 계단 공포증이 있다.
친절히 난간이 있지만, 얇은 철제 계단. 심지어 사이가 뚫려 있다.
디자인에 스텟을 몰빵한 이런 디자인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올라갔는데 애석하게도 오픈 전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시 내려온 후, 유어마인드는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내심 궁금했는데. 아쉬운 마음 퐁퐁.
바늘이야기
대신 찾아간 바늘이야기.
바늘이야기 건물이 어디지? 싶었는데 저렇게 크게 영어로 'banul'이라 적혀 있어 순간 머쓱했다.
이곳은 뜨개질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한다.
와.
뜨개질을 안 좋아해도 홀리게 생긴 곳.
특히 입구 쪽에 저렇게 실패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은 꽤나 압도적이었다.
왜 이런 곳에 오면, 뜨개질의 욕구가 샘솟는가.
그리고 나는 왜 저런 부자재를 보며 '다이어리에 달면 예쁘겠다'라는 생각을 품는가.
포근해 보이는 털실들을 뒤로한 채, 바늘이야기를 나왔다.
연남동 산책
연희동만 구경하자니 왠지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굴다리를 통해 연남동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연필가게 흑심은 들르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게 나았을 수 있다.
아마 그곳에 들렀으면 나는 블랙윙 연필을 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연남동 풍경.
연희동이 크고 깔끔한 느낌이라면, 연남동은 아기자기 뽀짝하다.
내가 좋아하는 소품샵 플로팅.
그리고 연남동 끝단에 있는 연꼬리길.
나는 이곳의 분위기가 참 좋다.
자고 일어나서 나왔는데 이런 풍경이라면 나는 매일 동네 산책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닐 수도 있고.
나는 연남동이 조금 더 내 취향인 것 같다.
경의선 숲길 산책으로 외출 마무리.
연트럴 파크의 끝에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가 기다리고 있다.
옵젵상가에서 사 온 와펜 4종류.
이 중 3개는 모자에 붙였고, 분홍 고양이 하나만 남았다.
며칠 전 고데기를 하나 샀었다.
머리가 단발이 되면서 일명 '거지존'이라는 영역에 머리카락이 도달해 버렸기에, 드라이어로는 도저히 수습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차피 숱도 많이 없고, 곱슬기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질끈 묶고 다녔는데.
이제는 풀고 다닐 수 있게 되었어!
다만 나의 새삥 고데기는, 와펜을 붙이는 데에 더 많은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핑크빛 열판 부분이 회색으로 물들어 버리는 비극을 당하였다.
아아ㅏㅏㅏㅏㅏㅏ.
그래도 머리 펴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무 좋아하고 옛날 건물 좋아하고.
어딜 가더라도 각 잡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연희동 연남동 산책은 평소와는 달리 소소한 맛이 있어서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그리고, 정말 예쁜 길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번에는 삼청동과 익선동을 한 번 다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