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때는 타이밍이다
사실 6월 4일 이후로 이렇다 할 만한 외출을 하지 못했다.
무리하여 나가기엔 너무 주저앉아 있는 시기이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는 어쩔 수 없이, 5월 하순에 다녀온 '오이도 바다보기 실패' 후기를 올려 보려고 한다.
(실패하였기에 굳이 올리지 않으려 했으나)
다음 주 금요일에는 새로 방문한 따끈한 곳을 여행기로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버스를 타다
이 날은 안산 쪽에 볼일이 있었다.
살짝 가라앉은 기분이 들 때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지난번 '뚜벅이는 뚜벅뚜벅 - 당일치기 인천역 주변 나들이' 때 올렸던 이야기를 재탕해 보자면, 마음이 힘들 때 침대는 눈물을 끌어내고 바다는 희망을 끌어낸다.
5월의 나는 바다가 참 그리웠던 모양이다.
안산에서 한 번에 오이도까지 갈 수 있다기에, 망설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탑승한 안산 55번 버스는 본오동 종점에서 오이도 차고지까지 운행한다.
나는 중앙역 부근의 정류장에서 탑승하였는데 처음 탈 때부터 승객이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빈자리의 여유가 많았다.
대선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이 본의 아니게(?) 5월임을 증명한다.
- 그러고 보니 이번엔 다음날 병원 스케줄 때문에, 대선 개표 방송을 못 봐서 아쉬웠다 -
지난번 월미도 때처럼 버스 안에 관광객으로 북적일 줄 알았는데, 너무나 텅 비어있던 55번 버스.
거의 막바지 30분은 계속 이렇게 텅 빈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이도역으로 향하고 있는 버스.
마치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순간 화장실 생각에 다급해지듯, 오이도라는 글자를 지도에서 목격하는 순간 푸르른 바다가 다급해져 오며 심장이 요동을 쳤다.
차고지에서 오이도 빨강등대까지는 20분 넘게 걸어가야 한다.
사실 차고지에서 오이도 바닷가까지 걸어가는 길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취객?과는 다른 양상의, 뭔가 살짝 다른 분위기의 행인을 마주쳤기에 그 여파로 신경이 살짝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종점에서 내렸고, 걸어가는 다른 루트는 모르니 어쩔 수가 없다.
최대한 힘차게 걷는 수밖에.
뚜벅이 여행의 동반자, 피크민블룸을 켜 놓은 채 길가에 꽃을 뿌리면서 말이다.
오이도 해물라면
여차저차 오이도 바닷가에 도착.
15시 55분.
무언가로 위장의 영역을 넓히기엔 상당히 애매한 시간이지만, 미리 봐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에 브레이크타임이 없는 곳이다.
'오이도에서 조개구이를 먹으리라'라는 로망은 있었지만, 사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혼밥 레벨은 만땅이기에 혼자 조개구이를 먹을 배짱이 있기는 하다.
다만, 혼자 2인분을 먹을 자신이 없을 뿐.
나는 나의 한계를 잘 안다.
호기롭게 혼자서 2인분을 시킨 뒤 고스란히 남기면 그것은 좀 꼴값 현타가 올 것 같았다.
아쉬운 맘에 조개구이 대신, 대표메뉴 중 하나인 '해물라면'을 미리 마음속에 찜해 놓았었다.
한 그릇에 15,000원이면 라면 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해서 살짝 기대는 했으나 사이즈는 일반 라면 그릇, 혹은 냉면 그릇쯤에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직원분께서 몇 분 뒤 트레이를 끌고 오실 때, 솔직히 저게 내 것인 줄 몰랐다.
아니.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라면을 준다고?
이쯤 되면 15,000원의 라면은 굉장히 가성비가 좋은 것이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혼자 바다를 보러 간 사람이었고, 분위기를 위해 앉은 창가 자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라면을 급속도로 퉁퉁 불게 만들어 버렸다.
예전에 이성계에게 '체하지 않게 불어드세요' 라며 버들잎을 물그릇에 띄워 주었다던, 교과서에서 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바람은 나에게 급히 라면을 먹다가 체하지 말라고 강풍을 선사해 주었다.
바람 저 친구, 배려가 조금 과했다.
심지어 조개껍데기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더더욱 불어 버렸다.
결국 이 해물라면의 리즈시절은 사진에서 보는 저 모습으로 끝나 버렸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먹을 만큼 먹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음.
짧은 오이도 투어
얼마 전 앨범을 정리하다가 20대 중반에 다녀온 오이도 사진을 보게 되었었다.
그 당시에는 등대 전망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기둥을 붙들고 찍은 사진이 하나 있더라.
기대를 송송 품고 추억 덮어쓰기를 위하여 빨강등대에 갔으나, 아쉽게도 이 공간은 내부 수리 중이었다.
설상가상 물때를 신경 쓰지 않고 방문한 나는, 찰랑이는 바닷물 대신 질펀한 뻘밭을 만나 버렸다.
참고로 웹사이트 '바다타임'이라는 곳에서는 전 지역의 간조/만조 시각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는 나중에 바다를 보러 갈 때 꼭 확인하시길 바란다.
뻘 앞에 뻘하게 서 있는 시흥 홍보대사 해로, 토로 구경하기.
바다 거북이와 육지 거북이 캐릭터인데 얼굴의 윤곽은 살짝 둘리가 연상되기도 하고 귀엽다.
괜히 아쉬워져서 빨강등대 한번 더 찰칵.
예전 기억을 꺼내어 비교해 보기는 그 기억들이 너무 케케묵은 것들이다.
따라서 오이도항 선착장 쪽을 천천히 산책하며 데이터를 새로이 덮어쓰는 과정을 거쳐 보았다.
이로서 내 머릿속 오이도 최신 방문 기억은 2025년 05월로 업데이트 완료, 땅땅땅.
찬찬히 걸어서 선착장 이곳저곳 탐험을 해 본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갯벌 체험도 하는 모양이다.
오이도항 수산물 직매장을 가볼까 하다가 왠지 그냥 구경만 하기엔 뻘쭘할 것 같아 입구에서 돌아선다.
걸어서 오이도역까지 갈까 하다가, 빨강등대에서 오이도역까지는 도보 1시간 30분이기에, 결국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사실 이 날 얇은 바람막이 재질의 옷을 입고 갔다가 거의 탈진 상태에 다다랐었다.
오이도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땀을 닦을 파우더 티슈를 검색하였다. 메쉬 소재의 얇은 반팔티와 함께.
이제는 예전처럼 추위를 많이 타는 몸이 아닐 것 같다 - 2025년의 여름에 맞춰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야만 한다. 쾌적한 뚜벅이 생활을 위하여.
짧고 가느다란 실지렁이 같았던 이날의 오이도 여행기는 이렇게 끝.
이 날의 교훈
1. 바다에 갈 때는 밀물 썰물 시간을 확인하고 가자.
2. 라면은 바닷바람 쐬면서 먹으면 금방 불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