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좀 해, 인간아

라고 거울이 말합니다

by Peach못한

안녕.

나는 거울이다.

이런 말 내가 직접 하긴 쑥스럽지만, 나는 기억력 하나는 참 끝내준다.


나는 화장대와 짝이다.

화장대는 나에게 두 발을 디디게 허락하고, 나는 대가로 수다스러운 화장대의 리스너가 되어 준다.


나는 나름 전용 고객도 있다.

이곳은 나의 평생직장이다 - 이곳에 뼈를 묻으리라.


나의 고객은 단 1명.

늘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를 마주한다.

고객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늘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네, 고객님. 오늘도 잠을 못 이루셨나요? 피부가 거칠어요."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묻지만 이 고객은 도통 을 안 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다 - 아마 본인의 얼굴이 맘에 안 어서 그러겠지 뭐.

하지만 이 고객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본인을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본인을 위해 뭔가를 더 하지도 않는다 것이다.


노력을 하란 말이야, 노오오ㅗㅗ력 말이야.


참 갑갑해 미치겠.

얼굴만 좌우로 돌려본다고 달라질 리가 있나.

혹시 마음에 드는 최적의 각도를 연구하는 걸까.

의미 없어 보이는데.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 한다.

에잇, 반사!

그녀의 얼굴을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돌려보낸다.


내가 하는 일은 반사.

스킬도 반사.

짜증 나도 반사.

반사적으로 반사.


내 고객은 오늘은 좀 많이 멍해 보이긴 한다.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다크서클이 좀 심네?

뭐, 관찰력이 워낙 뛰어나니까 알 수 있 거다.


그리고 나의 고객은, 쓰럽게도 기억력이 딸리나 보다.

딱히 뭘 하는 것 없이 늘 내 앞에 저렇게 앉아 있다가 가까.

그리고 매일 저러고 있으니까.

아니면 혹시 저게 재미있는 놀이인 걸까?


"저 사람, 로션 안 바른 지도 좀 됐어."

화장대가 내 엉덩이를 쿡 찌르며 속삭인다.

아.

... 혹시 사랑의 열병?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꾸 보러 오는데 고백할 용기는 없어서 밤잠 설치는 스타일?

어휴, 됐어.

백 반사.

암튼 인간은 참 흥미롭다.


뭐, 그래도 여기는 꽤 좋은 직장이다.

예전에 내 선임이 맡은 분은, 허구한 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귀찮게 시키고 해서 입가에 경련이 오고 현타가 왔다던데.

나의 고객은 다행히 그런 진상 짓은 안 한다.

아니면 본인이 안 예쁜 걸 알아서 그런가.

그런 거라면 좀 안쓰럽긴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고.


여하튼 뭐... 평생직장으로 나쁘진 않다.

여기서 월급 루팡이나 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 또 왜 누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