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냈던 중년 여성분이 있었다. 은퇴 후 멋지게 사는 사람이었다. 스포츠댄스에 미쳐 있었고, 나이에 비해 마르고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있어서 화려한 옷을 마음껏 즐겨 입었다. 무엇보다 젊은 시절 신문사 편집부장으로 일했던 감각을 아직도 갖고 있어서 이제 막 낚시로 건져 올린, 팔딱거리는 활어 같은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분이었다. 그분의 유일한 고민은 노총각 아들이었는데 드디어 늦장가를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며느리 될 사람을 소개하면서 그분이 선택한 문장이 참 독특했다.
위장이 튼튼한 여자야. 아주 마음에 들어.
예쁘다, 참하다, 성격이 좋다, 집안이 좋다, 역시 이런 식상한 표현이 아니다. 참 그분답다. 그런데 위장이 튼튼한 게 왜 좋은 걸까. 차마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 문장은 계속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본인이 소화력이 안 좋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 잘 먹는 사람만 보면 그저 예뻐 보인 것 아닐까. 그러기엔 그분은 마른 몸매에 비해 꽤 식사를 잘하셨다. 그렇다면 위장이 튼튼하지 않은 여자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꾸자 바로 그런 여자가 하나 떠올랐다. 나다.
나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강하면서 소화력은 약하다. 소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별미가 나오면 참지 못하고 많이 먹는다. 그러고 나면 반드시 아프다. 소화가 안 되면 두통까지 온다. 두통약과 소화제가 같이 들어 간 나만의 처방약을 먹고 몇 번씩 커다란 트림을 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난리를 치고 머리를 싸매고 앓아누워 있는 과정을 거쳐야 간신히 회복한다. 이런 일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아하, 이제 알겠다. 위장이 튼튼하지 않은 여자는 정말 골칫덩어리구나.
며칠 전 또 그렇게 몸져누워있는 나를 두고 주말 내내 빨래며 설거지며 청소며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해치운 남편이 갑자기 큰 결심을 했다며 나에게 고백했다.
“나 진짜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
“왜?”
“마누라가 이렇게 자주 아프니까 나중에 도우미 아주머니도 써야 할 것 같고, 나중에 병 구완을 하려면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
“그래, 많이 벌어. 그런데 어떻게 벌게?”
남편의 돈벌이 계획은 일단 비공개하겠다. 그게 정말 성공할지는 나도 아직 의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일화의 핵심은 위장이 튼튼한 배우자는 정말 매력적인 배우자감이라는 점을 이제 인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마 소화력이 좋으면 기초대사도 잘 돼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피부도 좋을 것 같다. 몸이 건강하면 컨디션도 좋기 때문에 매사 긍정적일 것이고 하는 일마다 탄탄대로 잘 될 것이다. 위장이 튼튼한 건 결국 만사형통의 근본이었던 것인가!?(조심 : 이 글은 위장 건강에 대한 자료 조사 없이 제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직 배우자를 고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위장 건강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화목한 가정의 지름길이리라. 하지만 소화력이 안 좋은 아내로서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주방 싱크대에서 퐁퐁을 헹구고 있던 남편이 뼈저리게 미래를 걱정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무튼 남편의 고백을 듣고 나도 나름 노력하기로 했다. 매력적인 여자는 가꾸기 나름 아닌가. 위장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위장이 튼튼하지 않기에 소식을 더 습관화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잃지 않기로 결심해 본다.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뼈를 깎는 노력도 아니니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