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부터 글을 썼더라. 초등학교 내내 썼던 일기장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때의 글쓰기는 의식하고 쓴 글쓰기가 아니다. 내가 글이란 걸 쓴다고 의식하고 쓴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짧은 소설이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얘의 갈색 눈동자가 자아내는 슬픈 분위기에 매혹돼서 그 분위기를 닮은 스토리를 써 내렸다. 이게 최초의, 의식적인 글쓰기의 기억이다. 여기서 ‘의식한다’는 말은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다는 욕구를 발견했다는 의미다. 그 얘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주 편지를 썼다. 다 보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아이의 마음 한쪽에 정박하고 싶었고 내 글은 그 애와 나 사이의 커다란 강물을 가르는 노질이었다. 끝끝내 닻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계속 써야 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국문과에 갔다. 소설을 썼지만 내 글에 힘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고학번 선배는 내 안에 상처가 없어서 글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했고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뭘 써도 밋밋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글로 밥벌이나 할 수 있겠냐며 내 미래를 걱정했다. 그때의 나도 제법 어른인 척하느라 월급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글쓰기는 최소한 내 밥벌이는 할 수 있을 때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자기 글을 내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블로그가 지금처럼 상업화되기 전, 초창기엔 좋은 글이 참 많았다. 내가 좋아한 글은 솔직한 글이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과감하게 자신의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부러웠다. 곧 그들이 좋아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파고들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사귄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브런치 플랫폼이 그런 친밀한 공간이 됐다.
오랫동안 글을 놓고 있다가 책 한 권 못 내고 죽을까 싶어 아차차 한 순간,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래전 그 선배 말처럼 나는 마음에 담아놓는 게 없는 성격이라 진짜 상처다운 상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런 무던한 성격의 사람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다. 그게 가장 나다운 글쓰기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고 이 일로 돈을 벌고 있다면 나는 분명 작가일 것이다. 스스로 작가의 역량이 무엇일지 고민해본 결과 글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과 꾸준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키도 소설 집필을 시작하면 정해진 분량을 써내고서야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지. 이렇게 결론을 내려놓고 나는 두려웠다. 이쪽 분야에선 난 아주 젬병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게으르다. 그래서 작가로서 나를 더 단련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연재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매일 9시를 연재 마감으로(불금은 하루 쉬는 걸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일명 <복숭아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 과연 성공할 것인가. 두둥.
물론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더 성실하게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 준 당신에게 나는 너무 불성실했다. 아무튼 이제 연재 노동자 연습이다. 진짜 연재는 돈을 받고 쓰는 거고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이 일로 나에게 돈을 주고 있지 않으니까 연습인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당신이 내 글을 읽어주고 있기에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를 물리치고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에게 스며들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