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Aug 22. 2020

연재 노동자 연습

내가 언제부터 글을 썼더라. 초등학교 내내 썼던 일기장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때의 글쓰기는 의식하고 쓴 글쓰기가 아니다. 내가 글이란 걸 쓴다고 의식하고 쓴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짧은 소설이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얘의 갈색 눈동자가 자아내는 슬픈 분위기에 매혹돼서 그 분위기를 닮은 스토리를 써 내렸다. 이게 최초의, 의식적인 글쓰기의 기억이다. 여기서 ‘의식한다’는 말은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다는 욕구를 발견했다는 의미다. 그 얘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주 편지를 썼다. 다 보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아이의 마음 한쪽에 정박하고 싶었고 내 글은 그 애와 나 사이의 커다란 강물을 가르는 노질이었다. 끝끝내 닻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계속 써야 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국문과에 갔다. 소설을 썼지만 내 글에 힘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고학번 선배는 내 안에 상처가 없어서 글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했고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뭘 써도 밋밋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글로 밥벌이나 할 수 있겠냐며 내 미래를 걱정했다. 그때의 나도 제법 어른인 척하느라 월급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글쓰기는 최소한 내 밥벌이는 할 수 있을 때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자기 글을 내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블로그가 지금처럼 상업화되기 전, 초창기엔 좋은 글이 참 많았다. 내가 좋아한 글은 솔직한 글이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과감하게 자신의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부러웠다. 곧 그들이 좋아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파고들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사귄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브런치 플랫폼이 그런 친밀한 공간이 됐다.       



오랫동안 글을 놓고 있다가 책 한 권 못 내고 죽을까 싶어 아차차 한 순간,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래전 그 선배 말처럼 나는 마음에 담아놓는 게 없는 성격이라 진짜 상처다운 상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런 무던한 성격의 사람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다. 그게 가장 나다운 글쓰기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고 이 일로 돈을 벌고 있다면 나는 분명 작가일 것이다. 스스로 작가의 역량이 무엇일지 고민해본 결과 글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과 꾸준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키도 소설 집필을 시작하면 정해진 분량을 써내고서야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지. 이렇게 결론을 내려놓고 나는 두려웠다. 이쪽 분야에선 난 아주 젬병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게으르다. 그래서 작가로서 나를 더 단련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연재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매일 9시를 연재 마감으로(불금은 하루 쉬는 걸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일명 <복숭아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 과연 성공할 것인가. 두둥.     



물론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더 성실하게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 준 당신에게 나는 너무 불성실했다. 아무튼 이제 연재 노동자 연습이다. 진짜 연재는 돈을 받고 쓰는 거고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이 일로 나에게 돈을 주고 있지 않으니까 연습인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당신이 내 글을 읽어주고 있기에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를 물리치고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에게 스며들고 있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