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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ug 23. 2020

꿈과 모험의 세계

      

이제 이 집에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이 오래된 아파트는 재건축 진행 중이고 적어도 1-2년 후엔 우리는 이사를 나가야 한다. 가진 돈은 적은데 직장 근처에서 살고 싶다. 직장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게 문제지만. 예로부터 문전옥답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문 열고 나가면 일할 논밭, 아니 일터가 있는 게 최고인거다. 이왕이면 라니랑 산책도 중요하니 근처에 공원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집값 전세값은 매일 오르고 있다. 띵동. 아파트 실거래 앱의 알람이 떴다. 눈여겨보던 아파트 전세가 또 올랐다. 한숨이 나온다.

“우리 이러다가 진짜 단칸방 살아야 하는 거 아냐.”     


둘이 사니까 그렇게도 어찌어찌 살아질 것도 같다. 대신 가구나 옷가지, 싸안고 있는 책들까지 많이 버려야 할 텐데, 그러면 지금의 삶이 질이 확 떨어질 것 같아 속상하다. 진짜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킹사이즈 침대부터 버려야 할 텐데, 30년 이상을 침대에서 잔 몽뚱아리는 바닥에서 자면 나면 허리가 아픈데 말이지.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이런 고민을 안고 살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서울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 직업이 지역 간 이동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인사교류를 통해서 지역을 옮길 수 있다. 내가 가고 싶은 지역에서 내 쪽으로 오려는 희망자를 찾아야 하는데, 서울로 오려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은 나보다 더 자유롭다. 1인 자영업자니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그 곳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서울에 비하면 지방 집값은 정말 싸서 깜짝 놀랐다. 서울 지방의 몇 십억 단위에만 눈이 익숙해져서 지방의 한 아파트의 매매가 6.5천을 6억 5천으로 잘못 읽기도 했다. 대략 2-3억 정도의 자금이 있으면 지금 집보다 훨씬 넓은 집, 궁궐 같은 집을 심지어 살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돈이 없어서 집을 찾아 지방으로 쫒겨 나가는 모양새지만, 묘하게 패배감은 들지 않았다. 사실 서울의 그 복잡함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이곳을 벗어나면 조금 덜 경쟁하고 조금 더 단순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서울만 생각하고 살던 좁은 시야를 가졌던 나에게 다른 대안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처음에 생각했던 지역은 강원도의 K시였다. 바다와 호수를 끼고 있는 관광도시. 몇 번 놀러가서 익숙한 동네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흥미로워 하며 K시에 대해 이리저리 검색을 했다. 그리고 흥미롭지만 곤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곳은 기상 이변이 빈번한 곳이었다. 5월에 갑작스레 30도가 넘는 열대야가 일어나거나 여름이나 겨울에 비나 눈이 짧은 순간 한꺼번에 내려 사람들 곤란하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하나도 내리지 않아서 다시 곤란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W시가 새로운 후보로 올랐다. 전에 사무실 옆자리 직원이 W시의 사는 지인이 집들이 파티를 갔다 왔는데 자기네 부부가 사는 투룸 오피스텔 전세 가격으로 30평 짜리 집을 샀다며 엄청나게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또 지금 사무실 후배의 친구가 그 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데 일이 없고 편한 근무 환경이 너무 좋은 나머지 그 도시마저 너무 좋아져서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또 바로 그 도시를 검색했다. 그는 여러모로 애매한 거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서울에서 애매하게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 지방 소도시의 한적함을 지니면서도 깨끗하게 조성된 신도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새 집 이슈를 잊었다. 아직 한참 뒤의 일이라 생각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당장 마음의 준비는 안 된 상태랄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은 큰 모험이었다. 가서 살면 또 어찌어찌 적응하겠지만 아픈 강아지가 있는데  24시 병원이 잘 구축된 서울을 떠나는 게 맞는 일인가 걱정스럽기도 했고......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어느날 저녁 퇴근하고 들어온 나를 잡고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그 도시의 B동에서 살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만약 가장 먼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는다면 차로 몇 분 걸릴지를 다 계산해 봤다는 것이다. 교통이 복잡하지 않은 지역이라 30-40분 내로 출근이 가능하다며 그 도시에서 살면서 실제적으로 생길 문제 하나가 줄었다는 데에 기뻐했다. 헙. 나는 그냥 미끼를 던졌을 뿐인데 그는 벌써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해 본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일에 갑자기 현실감이 생겼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이 말한다.

“나 요새 다시 한 번 롯데월드가 가보고 싶어졌어.”

“왜 갑자기?”

“꿈과 희망 모험과 신비의 세계잖아. 어렸을 때 그곳에서 놀면서, 물론 진짜 모험이 아닌 걸 알지만, 모험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그 감정의 파편이 그리워서.”

“근데 난 놀이기구 잘 못 타는데...자이로드롭은 절대 절대 못타. 그래도 롤로코스터까지는 같이 타줄 수 있어. 물론 타는 내내 너무 무서워서 눈도 못 뜨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겠지만...당신이 타자고 하면......”

“근데 거기도 테마가 많이 망가진 모양이야. 새로운 어트랙션이 들어오면서 말이지. 그래도 꼭 한번 다시 가서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그렇구나.”

“근데 말이야, 당신은 왜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

“우리는 집돌이 집순이니까, 한쪽 방은 홈트방, 부부 각자 방 하나씩 갖고, 우리 라니도 넓은 침대 좋아하니까 침대방 하나 주고~ 그렇게 살면 좋을 거 같아.”

이런 대화를 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 타는 꿈을 꿨을까, 아니면 W시에서 집을 구하는 꿈을 꿨을까.      


며칠 후 남편의 생일날 나는 케이크와 손편지를 준비했다. 손편지는 생일 편지답게 식상하게 시작했다. 생일 축하해. 더운 날 태어나느라 고생 많았어. 지금 한창 복숭아가 나오는 계절이니 내가 당신 좋아하는 복숭아 잘 깎아줄게. 그런데 한 줄 한 줄 쓰다보니 갑자기 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내 꿈과 희망과 모험의 세계는 바로 당신이야.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지만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떠날 수 있을 거 같다. 우리가 정말 그 낯선 도시로 떠난다면 그건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일거야. 우리 이 세상 수많은 모험을 함께 하게 되겠지. 그리고 이번에 만약 롤러 코스터를 탄다면 말야, 당신 팔을 꼭 붙잡고......눈을 떠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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