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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ug 24. 2020

불면의 밤

안 되는 걸 너무 노력하지 말자


저녁 늦게 두통약을 먹었더니 두통은 가셨는데 잠이 안 온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지 않는다. 정신은 더 또렷해진다. 내일은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기 위해 더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몸을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는 방법들을 동원해 본다. 스마트폰을 덮고 자보려다가 다시 스마트폰을 들기를 반복. 이 시간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불면증 치유 음악>, <숙면으로 이끄는 요가 니드라>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인기 영상으로 떠 있다. 잡념을 지우고 음악에 집중하면 잠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기분만 들뿐, 실패다. 어쩌면 두통약에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약물은 효능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니까 어쩌면 오늘은 이대로 못 잘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은 이렇게 심란한데 옆에 남편은 몸을 대자로 뻗고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잘 잔다. 거실에 강아지까지 코를 곤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코골이를 듣노라면, 문득, 외로워진다. 분명 사랑하는 남편과 멍멍이가 내 옆에 있지만 이 밤의 정적이 만들어 내는 고독은 온전히, 깨어 있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나는 괜히 더 외로워져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얼마나 깊이 잠든 걸까 싶어 괜히 턱이랑 이마도 손으로 짚어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잘 잔다. 강아지 옆에 가서 괜히 쓰담 쓰담해본다. 그래도 명색이 개라고 슬며시 잠에서 깬다. 양발을 뻗어 기지개를 쭉 하고 몸을 살짝 뒤집어서 배를 보여준다. 살살 배를 긁어주니 이 녀석, 스르륵 금세 잠이 든다. 나만 빼고 모두 잘 잔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잠 안 자는 밤’에 익숙하다. 한때는 이 시간을 사랑했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이유로. 완전 꽂힌 드라마에 빠져 밤새 정주행을 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팬질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애인과 속닥거리는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이별을 감당 못하고 계속 흐르는 눈물을 티슈로 닦으면서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밤새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무언가가 되고 싶어 안달 났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끌어안고 흐릿하게 동터오르는 하늘을 보면서 지쳐 잠들었던 밤. 밤. 밤. 20대 그 불면의 밤이 지금의 내 감수성과 불안과 허무함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니 중고등학교 때는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벼락치기 습관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공부는 미리 안 해놓고 불안감은 어쩌지 못해 그냥 나 몰라라 덮어놓고 잠을 자려다가도 잠이 안 와서 밤샘 공부를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약국에서 잠 안 오는 약을 판다는 말을 듣고 남몰래 구매했다. 지금으로 치면 레드볼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부작용으로 심장이 많이 벌렁거릴 수 있고, 다음날 미친 듯이 잠이 쏟아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약사에게 물었다.

"먹고 쓰러지는 건 아니죠?"

그렇게 겁은 났으면서 먹고 밤새 공부를 했더랬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모범생이었다. 걱정을 많이 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현재의 잠까지 미룰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자려고 노력하는 것, 이놈의 노력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일에 대한 압박감에 더 잠이 안 오는 것 같고, 자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어둠에 잠식돼 가는 기분이다. 벌떡, 일어난다. 그냥 자지 말고 이 밤을 즐기자. 내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자. 고작 출근 따위 말이야, 내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어쨌든 이 밤을 즐겨보자. 아아, 아름다운 불면이여.





커버 사진 Designed by jcomp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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