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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ug 26. 2020

누군가를 빤히 응시한다는 것

요새 넷플릭스에서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우리 사무실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왔던 한 남자애가 자기 인생 드라마라고, 지금까지 10번 정도 봤다는 말을 듣고,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그렇게 빼앗은 그 드라마의 매력은 뭘까, 하고.



아침 출퇴근 때마다 틈틈이 봐서 진도가 그렇게 빠르진 않다. 지금 5화까지 본 소감은 이렇다. 일단 영상이 참 예쁘다. 인물들이 다들 뽀샤시한데다 인물과 배경, 소품을 어울려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는 듯한 화면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인물들이 툭, 무심하게 뱉는 대사가 이 작가가 구사하는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손발이 오그라들 거 같은 대사를 툭, 뱉는데, 또 그 말이 보는 사람 마음에 중력을 9배쯤 크게 만들면서 순식간에 쿵,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 인물들이 서로를 깊이 응시하는 화면이었다. 어찌 보면 소중한 드라마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 정말 많다. 처음에는 그 클로즈업이 답답했다. 그러다 힘이 팍 들어간 주인공의 눈빛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터져버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염없이 대사를 떠들지 않고 침묵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다. 그러다 글쓴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누군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말없이 응시한 적이 있어?



나의 시공간은 말로 채워져 있었다. 당황하거나 놀란 순간 때론 억울하고 화난 순간까지, 그러니까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들에서 나는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나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정지 화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즉각 화를 내지 않으면 무시했고, 어디서 잘못된지도 모르게 어그러진 일에 빨리 대답을 해보라고 채근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기 방어적으로 나오는 말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그 순간을 다시 재생하고 또 재생하면서 내가 뱉은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밤새 후회했다. 더구나 그 순간에 응시란? 차라리 회피했다. 눈을 피해야 간신히, 그 순간을 모면하는 말들을 어지럽게 던질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깨어 있을 때 그 사람이 잠들어 있는 걸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문이 막힐 정도로 설레서, 그 모습을 끝도 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가 눈을 뜨면 그렇게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럼 분명 상대방은 왜 그렇게 바라보냐고 물어볼 거고, 그럼 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 생겨져 보이지?” 이런 실없는 말로 받아쳤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감독님이 컷! 할 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드라마처럼 할 수 없겠지만 나도 말문이 막히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싶다. 그 순간이 피하고 싶은 모욕적 순간이라도 제대로 응시하고 싶다. 회피와 변명과 후회로 그 순간을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다. 만약 그 순간이 너무 사랑스러운 순간이라면 정지화면으로 만들어 마음속에 캡처해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모든 배경음악과 쓸데없는 대사를 빼고, 오직 그 사람만을 담고 싶다.  



말하지 않을 용기, 뻔뻔할 정도로 상대방을 응시할 용기.

그 용기의 씨앗을 이렇게 뿌리면 우리 인생은 좀 더 드라마 같이 아름다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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