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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pr 29. 2022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가끔 978번지 언덕에 간다

미끄럼틀에서 놀았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열두 살 겨울방학이었고, 우리 집 이삿날이었다. 가족들이 한참 이삿짐을 풀고 있을 때, 혼자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렸다. 어차피 짐 정리하느라 분주한 어른들 틈에서 어린애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사실 새 집이 너무 낯설어서 그랬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 살았던 예전 집에서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중학생이 될 나에게 있어 ‘집’은 여전히 언덕배기에 있는 낡은 집이었고, 그 세련된 명칭 ‘현대아파트’는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삿날 슬그머니 도망 나와 옛날 동네에 가서 친구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어디 갈지 방황하다가 결국 새로 이사 온 우리 집 앞까지 다시 걸어왔고, 그 앞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을 때웠다. 

“이사 가면 이제 자주 못 보는 거야?”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된 친구가 속상해했다. 

“여기서 만나서 놀면 되지.”

겨울, 해가 지는 텅 빈 운동장에서, 나는 희미하게 말했던 것 같다.


성남시 금광1동 978번지. 그곳은 산을 그대로 깎은 터에 집들이 줄 서듯 웅크리고 있는 우리 동네, 우리 집 주소였다. 하늘을 향해 질주하는 언덕이 하수구가 달린 평지에서 잠시 숨을 내쉬듯 끊겼다가 다시 언덕으로 이어지는 곳.


언덕의 봄은 집집마다 각설이의 노래로 시작됐다. 노랫말 그대로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것이다.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아코디언의 늘어지는 가락이 문지방을 넘었다. 숟가락을 뜨는 게 괜히 민망해져 머뭇머뭇 눈치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부엌에서 밥 한 그릇을 갖고 나와 그들에게 말없이 건넸다. 장마가 시작되면 언덕 아래는 늘 물에 잠겼다. 당시의 형편없는 배수 시설은 폭우를 감당하지 못해 물은 거꾸로 넘쳐흘렀다. 아이들은 어느 집 지하가 잠기는 건 생각도 못하고 빗물받이에서 꾸역꾸역 넘치는 물바다에 참방참방 발을 담갔다. 겨울의 언덕은 미끄러웠다. 눈이 오면 아이들은 어디선가 시멘트 포대자루를 갖고 와서 미끄럼질을 하며 놀았고, 어른들은 골목마다 연탄재를 뿌리고 자동차 바퀴에 체인을 끼고서 조심조심 걸어 일터로 나갔다. 


나에게 세상은 언덕이었기 때문에 언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집이 있는 언덕은 당연히 ‘우리 집 언덕’이라 불렸다. 과자를 사기 위해 자주 가는 제일 슈퍼는 ‘영우 아줌마네 언덕’이었는데, 엄마랑 제일 가까운 아줌마 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사이 언덕들은 더러운 언덕, 무서운 언덕으로 불리곤 했다. 쓰레기도 많고 으슥한 기운이 감돌아서 잘 가지 않아 그렇게 불렀지만 그 이름은 어린애들의 변덕처럼 쉽게 각색되곤 했다. 무서운 언덕은 편을 나눠 물총 놀이를 할 때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하기 좋은 담벼락이 있어서 든든한 아지트가 되기도 했고, 동네에 수상한 걸 찾는 탐정놀이를 할 때는 이야기가 샘솟는 주요 탐사 지역이기도 했다. 집과 집 사이,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에 끼인 신발 한 짝 같은 걸 발견하고 이야기를 탐미했다. 왜 한 짝일까. 나머지 한 짝은 대체 어디 간 걸까. 이런 불완전한 이야기 조각들이 언덕의 그늘에서 끊임없이 피었다 지곤 했다. 


어느 날 동네에 큰 사고가 났다.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났고, 곧바로 ‘으아아아악 ’ 비명 소리가 났다. 어른들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동네 사람들 몇몇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재은이 아줌마가 길에 나자빠져 있었다. 아줌마가 울부짖었다.


“옥상에서 떨어졌어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


아빠는 아줌마를 둘러업고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무성한 추측이 나돌았다. 자살 시도를 했다, 발을 헛디뎠다, 괴한이랑 싸웠다……



나중에 들은 사연은 이렇다. 동네의 가내 수공업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점심식사를 집에 와서 해결했는데, 그날 깜빡 잊고 열쇠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문을 못 열면 점심은 밖에서 해결했으면 됐을 것을, 악착같이 돈을 아꼈던 아줌마는 밥 사 먹을 그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 순간 아줌마의 눈에 띈 것은 창문. 그 창문은 옥상 바로 아래 있어 잘 잠그지 않았다. 그래서 아줌마는, 점심값을 아끼고 싶었던, 아니 아껴야만 했던 아줌마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말았다. 옥상에 매달려서 발로 창문을 밀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무모한 상상 말이다. 얼마나 사람이 악착같으면, 얼마나 사람이 무모하면 그러냐고 사람들은 혀를 찾다. 그래 봤자 물 만 밥에 김치나 얹어먹을 거면서. 아줌마는 퇴원 후에도 한참동안 허리를 못 편 채 그 공장을 나갔다     


옥상 추락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영우네 골목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자가 알몸으로 피범벅인 채 발견됐대.”

“진짜?”

“응, 경찰도 왔다 갔대. 강도가 들어와서 칼로 찌르고 도망갔대.”


못 사는 동네에 뭘 훔칠 게 있어서 들어왔을까 싶다가도 원체 문단속이 허술한 집 투성이니 그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어제는 살인자가 나타날까 봐 오늘은 죽은 사람이 귀신으로 나타날까 봐 이래도 저래도 무서워서 그쪽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와 그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엄마가 들려준 진실은 재은이 아줌마 이야기보다 더 궁상맞기 짝이 없었다. 그 집에 경찰이 왔다 갔다 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온 진짜 이유는 거기 살던 아줌마가 곗돈을 들고 야반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아야, 사실 나도 거기 계모임을 했었어.”

엄마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돈을 들고 그렇게 튀어버렸으니 억울하고 분통해서 뭐라도 건지려고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그 집에 쳐들어갔거든. 근데 정말 가져갈 게 하나도 없더라고. 부엌에 가서 쌀독을 열어보니 쌀이 있길래, 이거라도 가져가야 되겠다 싶어서 쌀을 퍼왔지. 그런데 그 쌀로 밥을 지려고 보니까 온통 쌀벌레가 껴서, 벌레 잡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얼마나 욕지기가 나오든지.”

“그걸 왜 잡고 앉아 있어. 그냥 버리지!”

“얘 봐라, 쌀 귀한 줄도 모르고…. 그땐 다 그러고 살았어.” 


그때 엄마는 웃는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재은이 아줌마는 악착같이 옥상에 매달려 창문을 열어야 했고, 엄마는 악착같이 쌀벌레를 골라내며 밥을 지어냈다. 말을 마치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 엄마의 옆모습에서 내가 발견한 건, 978번지의 바로 그 언덕이었다. 그 언덕은, 엄마의 언덕이고 재은이 아줌마의 언덕이고 나의 언덕이기도 했다. 자기 앞의 숙명처럼 놓인 그 비천한 언덕 끝에 매달리고 뒹굴고 꾸역꾸역 올라가야만 했던 삶의 비애였다. 언덕은 내 안에서 날카로운 송곳처럼 솟아오르면서 화석 같은 문장을 새겨 넣었다. 생의 밑바닥에 있는 그 비애를 잊지 마.  


그날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했던 미끄럼틀 놀이는 ‘탈출’이라고 불렀다.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모여 있다가 술래가 ‘시작’을 외치면 미끄럼틀 밖으로 탈출하는 놀이다. 나는 미끄럼틀 중간쯤까지 내려오다가 나를 잡겠다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술래를 따돌리려고 다시 경사를 올라간다. 그날 나는 미끄럼틀을 탈출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여러 차례 탈출 놀이를 했으니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겠지. 다만, 내가 978번지를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미끄럼틀에서 계속 그곳을 생각했다. 나는 그곳의 폐부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모든 지름길을 알았고, 돌아다니는 개가 우리 동네 개가 아닌지도 알았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았고, 그들의 마음의 허기와 생의 고단함마저 알아버렸다. 그래서 뜨끔했다. ‘여기를 떠나다니, 이 배신자!’ 그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나는 내 영혼의 한 조각을 그곳에 두고 나오기로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 그러니까 고단한 생을 이어나가는 힘은 사실 이 구질구질한 슬픔이라는 걸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제 그 동네는 재개발이 되어 세상에 없다. 오직 내 안에 존재할 뿐이다. 생을 뒤흔드는 바람이 불어 심연에 눈물처럼 떨구어놓은 모진 생명력을 들여다봐야 하는 날, 나는 눈을 감고 그 언덕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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