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도 새끼손가락이 짧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나도 너처럼 새끼손가락이 남들에 비해 한 마디 정도 짧아. 사람들의 새끼손가락은 약지의 두 번째 마디까진 오잖아. 내 건 그만큼도 채 자라지 못했어. 어렸을 땐 쑥쑥 자라나는 다른 손가락들에 비해 그 손가락만 유난히 안 자라길래 그래서 ‘새끼’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생각했지 뭐야.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안 이후에 이 증상이 ‘단지증’이라 부르는 유전적 질환이라는 걸 알게 됐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구성하는 뼈는 모두 존재하지만 이들 중 일부가 짧은 경우를 일컫는 병명이 이 세상에 존재하더라고. 우리처럼 새끼손가락이 짧은 사람도 있고, 엄지손가락이 짧고 넙적한 경우도 있고 한쪽 발가락이 짧은 경우도 있대.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가락 발가락을 사용하는 데 기능적인 문제는 없으니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해.
있는 듯 없는 듯 작디작게 존재하는 새끼손가락이 가끔 한 번씩 자기 존재감을 크게 드러낼 때가 있어. 가령 장갑을 낄 때가 그런 순간이잖아. 너도 알지? 장갑을 끼면 새끼손가락 부분만 잔뜩 남아돌잖아. 피아노를 칠 때도 도에서 도까지 절대 닿지 않았어. 어렸을 땐 같은 반 얘들이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했는데, 내 손가락이 떡꼬치에 꽂힌 떡 같다고 하더라고. 작고 통통한 모양에 그런 유치한 게 연상됐나 봐. 그래도 손가락이 떡 같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괴기해. (배고프면 뜯어먹는 건가) 그 새끼손가락 하나 때문에 손 전체적인 균형을 깨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예쁜 네일 아트를 해도 내 손이 어색했어. 마치 아이가 엄마의 뾰족구두 신고 나와서 온갖 예쁜 척하는 부자연스러운 느낌 같은 거 있잖아. 네일아트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탤런트 박신혜가 생각나네. 의학 드라마에서 의사 역할로 출연하면서 손가락에 네일아트를 해서 논란이 됐었는데, 알고 보니 엄지손가락 단지증을 감춰보려고 한 거였다고, 그래도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했던 일이 있었어. 손가락을 감추고 싶은 마음, 뭔지 알 것 같아. 미디어에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노출해야 하는 사람에겐 그런 못생긴 손가락은 콤플렉스가 될 수 있겠더라고. 그러니까 수술하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다행히 난 콤플렉스까지 느끼진 않았어. 다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지. 남자 친구랑 손잡는 것까진 좋은데 굳이 내 새끼손가락을 알아채진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의 불편함 정도랄까. 자기 몸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코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쌍꺼풀이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런 부러움이랑 비슷했어. 내 손가락도 길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걸 어쩌겠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거고, 크게 불편하진 않으니까 그냥 사는 거지, 그런 무던한 마음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내 손가락 이야기를 하는 거야. 며칠 전에 의학 프로그램을 봤는데 단지증에 대해 나왔다면서 갑자기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엄마는 여태까지 몰랐어. 네 새끼손가락이 그렇게 유난히 자라다 만 것처럼 짧은 게 유전인지. 세상에. 내 약지 발가락 짧은 게 그렇게 유전된 거였어!! 딸한테 예쁜 것만 물려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그런 못생긴 게 유전됐다니. 미안해.”
그 순간 존재감 없었던 그 녀석이 내 마음에 붕 떠올랐어. 엄마는 지금껏 이게 유전일 걸 몰랐구나. 귀하게 키운 딸의 못생긴 손가락의 비밀을 이제야 알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엄마가 마음 쓰는 것 같아서 최대한 밝게 대답해줬어.
“엄마!! 뭘 그런 거 같고 그래. 난 이미 유전인 거 알고 있었는걸. 그러니까 괜찮아. 난 그런 거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까 정말 괜찮아.”
그렇게 전화를 끊고 새끼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어.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지. 지금까지 그 손가락에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엄마가 미안해하니까 갑자기 미워지는 거야. 엄마는 왜 늘 나한테 미안해하는 걸까.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자꾸 마음 쓸 만큼 완전하게 자라지 못했을까. 아직도 이토록 미숙하기 짝이 없을까. 어째서 지금껏 온전한, 완성된, 성숙한 존재가 되지 못해서 늘 엄마를 걱정시키는 존재밖에 되지 못하는 걸까. 자립심 강한 인격체로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독립심과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부모의 그늘 안에서 기대고 싶은 내 연약함이 충돌하는 그 순간, 유난히 짧은 새끼손가락은 내가 영원히 성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암시이자 표식이 되어버린 거야. 엄마를 사랑하지만 때론 엄마의 기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때론 자식을 향한 엄마의 미안함이 버거웠던 나는, 엄마가 제발 나한테 그만 좀 미안해했으면 좋겠는데, 난 그저 엄마의, 영원히 자라지 않는, 작고, 아픈, 손가락이었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얼마 전에 나는 너를 만난 거야. 새끼손가락이 짧은 너를. 너는 사람들 앞에서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매력포인트를 말해야 하는 질문을 받았어. 지금 생각해도 참 짓궂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 않니? 그래서인지 너는 꽤 오랫동안 대답을 망설였어. 한참 생각에 빠진 너는 너의 짧은 새끼손가락을 매력포인트라고 말한 거야.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게 매력포인트가 될 수가 있지? 그건 오히려 못생긴 거 아니었어? 그게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귀여운 매력이 될 수 있다니. 엄청난 역발상에 그저 깜짝 놀랐는데, 세상에!! 또 다른 네가 불쑥 나서는 거야. “엇, 나도 새끼손가락이 짧아요!”라면서 자기 손가락을 보여주며 싱글벙글 웃는 거야. 그렇게 너희들끼리 반가워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도 그래요!”이러면서 냅다 고백해버렸지 뭐야. 타인에게 내 못생긴 손가락을 고백해 본 건 처음이었어.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정말 별 거 아니더라.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말한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그래, 그건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콤플렉스도 아니고, 엄마의 죄책감도 아니고, 그냥 객관적인 나의 손가락이었을 뿐이었던 거야.
짧은 새끼손가락이 나만의 특별한 것이라니. 그 순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주고 싶었어. 엄마,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지 못해서, 다시 말해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생각해보니까 내 새끼손가락 귀엽고 사랑스러운 거 같아. 엄마가 물려준 이 특별한 손가락 덕분에 나는 내가 어디 있든 엄마랑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었거든. 사실 손가락뿐만이 아니잖아. 내가 엄마 판박이잖아. 눈, 코, 입 다 엄마 닮았고, 심지어 입술 아래 점까지 빼다 박았지. 그러니까 엄마의 짧은 발가락이 내 손가락으로 이어진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잖아. 엄마를 쏙 빼닮은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엄마와 내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였어. 항상 내 편인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건 정말 든든한 기분이었어. 뭔가를 저지르고 실패해도 최소한 도망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안심이 됐거든. 나는 어쩌면 엄마에게 영원히 미숙한 존재고 계속 품어줘야 할 아픈 손가락일 수 있어. 그건 어쩌면 부모 자식이라는 우리 관계의 숙명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엄마가 자꾸 나한테 미안해하는 거에 이제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해. 그게 엄마가 날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거든. 그리고…그리고 말이야, 엄마도 엄마의 짧은 발가락을 따뜻하게 바라봤으면 좋겠어. 그거 엄마의 엄마가 물려준 아주 특별한 발가락이잖아.
단지증을 갖고 있는 엄마에게 실컷 내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까 문득 네가 떠올랐어. 정확히는 못생긴 손가락을 대했던 네 마음이 떠올랐지. 무던한 체했지만 꽤 신경 쓰고 있었잖아. 그냥 못 본 척 무시하기도 했고, 싫어하기도 했고, 괜히 억울하기도 했고 그랬잖아. 아주 교묘하게 손가락에 대한 미움을 숨겼지만 여기까지 읽었으면 이제 너도 인정했으면 좋겠어. 네 손가락에는 죄가 없다는 거. 손가락을 못생기 게 만든 건 네 못난 마음이라는 거 말이야. 그럼 이제 우리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볼까? 언젠가 남들이 모르는 나만 알고 있는 매력포인트가 뭐냐는 질문을 받거든, 답은... 이미 알고 있지? (웃음) 그나저나 이렇게 네 새끼손가락을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귀엽다!
그럼 이만.
새끼손가락이 특별히 예쁜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