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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Nov 28. 2022

롤러코스터를 잘 타는 방법

경주월드 드라켄

이 글은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롤러코스터 잘 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살면서 내내 그것을 무서워하고 심지어 혐오했지만 얼마전에야 비로소 재미있게 타는 방법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알았을지도 모를 그 방법을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겨우 깨우쳤으니 참 부진한 사람같이 보여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부끄러움보다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뿌듯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 이런 류의 감정은 한 개인이 성장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데, 그런 경우 스스로를 자축하고 싶기 마련이니까. 나에겐 이 글이 축하파티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상장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인생에서 롤러코스터 잘 타는 방법 따위는 누구도 공들여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인생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롤러코스터 타기를 성공한 후 지금껏 아무도 이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잠깐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라도 이 방법을 알려야겠다는 작은 사명감도 한몫했다.



어린 시절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고난 후 내 인생에서 놀이기구라는 옵션을 선택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고점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순간 심장이 쑥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고 호흡곤란까지 느꼈다. 발 아래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이 있고 온 몸이 그 밑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몸은 긴장으로 경직돼 버렸다. 당장 집어치우고 내리고 싶은데 기계 작동이 끝날 때까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는 것도 큰 공포였다. 스스로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갇혀 있다는 두려움은 비행기에서 느끼는 폐쇄 공포증이랑 유사했지만 그래도 비행기는 교통수단이라는 명목이 있지, 이건 이 기분이 좋아서 타는 거라니. 손에 힘을 꽉 주고,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비명조차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의 무서움을 참는 방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 후 롯데월드 놀이기구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일이 생겼고 내 다짐은 신념으로 굳어 갔다. 안전장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놀이기구가 작동했고 사람이 날아가서 석촌호수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었다. 그럼 그렇지. 놀이기구를 타다간 저렇게 죽을지도 몰라. 놀이기구는 인간이 만든 가장 한심한 발명품이 틀림없었다. 급기야 스스로를 놀이기구 같은 충동적인 재미를 즐기지 않는 고상한 취향을 가진 인간으로 격상시키는 같잖은 선민의식으로 무장시켰는데, 원래 무서운 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기괴한 자존심만 세우기 마련이다. 다행히 놀이기구 못 타는 것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못 타는 거에 비하면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가게 되면 밑에서 기다려주면서 옷이나 가방을 들어주면 그럭저럭 모면할 수 있었으니까. 단단한 땅 아래 발 붙이고 서서 높은 곳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면서 참 다른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를 피하며 살았지만 살다보니 어느 순간 인생이 롤러코스터일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비유와 맞닥뜨렸다. 탑승한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강제로 탑승당해 살아야 하는 건 가혹한 인간의 운명 같다고 할까. 인생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달리기도 했다. 천천히 달리다가 곤두박질치고 다시 올라가면서 힘없는 인간을 놀리는 거대한 인생의 장난 같았다. 다행히 아직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지만 필멸(必滅)을 향해 달리는 내 운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 이 ‘롤러코스터 운명론자'는 어느 날 곧 진짜 롤러코스터를 타야할 날이 왔다는 걸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2년 전 신혼집을 떠나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삶의 궤도를 바꿔야 하는 고민을 했다. 서울의 집값은 너무 비쌌고 지금보다 더 나은 집에 살고 싶다는 고민에 빠졌다가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 내려가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연고도 없는 지방의 이 도시 저 도시가 언급됐고 설렜다가 단념했다가 또 설렜다가 두려웠다가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불현 듯 침대에서 남편이 롯데월드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왜 갑자기?”

내가 물었다.

“꿈과 희망, 모험과 신비의 세계잖아. 어렸을 때 그곳에서 놀면서, 물론 진짜 모험이 아닌 걸 알지만, 모험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그 감정의 파편이 그리워서.”

“근데 난 놀이기구 잘 못 타는데...자이로드롭 같은 건 절대 못 타. 그래도 롤러코스터는 예전에 한번 타봐서 꾹 참고 같이 타줄 수는 있겠지만. 웬만하면 타고 싶지 않아. 타는 내내 너무 무서워서 눈도 못 뜨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 할 거야.”

“꼭 놀이기구를 타진 않아도 돼. 그냥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거지. 근데 거기도 테마가 많이 망가진 모양이야. 새로운 어트랙션이 들어오면서 말이지.”

이런 대화를 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대화의 여운이 남아 있었나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남편의 생일 축하 편지를 쓰다가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험’이라는 글자가 심연에서 떠올랐다. 나는 하나의 문장을 완성했다.

“내 꿈과 희망과 모험의 세계는 바로 당신이야.”



이 문장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확실한 예감이었다. 이곳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다는 건 우리가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고, 어쩌면 그동안 겁내서 하지 못했던 그 일을 함께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믿음. 운명의 롤러코스터의 갑작스런 가속에도 버틸 수 있으리라는 확신. 나는 써내려갔다. ‘앞으로 우리는 수많은 모험을 함께 하게 되겠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당신은 내 두려움을 이해해 주겠지. 그래서 만약 이번에 롤러코스터를 탄다면 말이야, 당신 팔을 꼭 붙잡고......눈을 떠볼게.’



삶의 궤도를 크게 틀지는 못했다. 우리의 롤러코스터는 인간 자유의지 90%와 운명 10%의 연료로 아직은 완행 코스를 달리고 있어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 쓴 편지를 지금 다시 펼쳐보고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아냈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 과거의 나는 이미 그것을 잘 타는 비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현자의 돌은 이미 내 안에 있었구나. 그걸 모르게 판도라를 찾아 열어야 한다는 운명에 부름에 따라 경주월드의 드라켄을 타러 떠난 거였구나. 90도로 수직 다이빙을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낙하 높이, 최고 낙하 각도, 최고 속도를 가진 드라켄. 이 정도 빌런이어야 나의 영웅담이 그럴듯해지지. 이렇게 한 찌질이가 내면의 두려움과 싸우고 악당을 무찌르는 대영웅 서사시를 만들고 싶지만...사실 롤러코스터를 잘 타는 비법은 너무 단순해서 그 정도 대서사시까지 나올 수 없을 거 같다. 아아,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제 비법을 공개해 보자. 사실 답은 이미 앞에 나왔다. 눈을 뜨고 타면 된다. 너무 단순한가. 하지만 삶의 진리는 원래 단순한데 그걸 잊어서 늘 문제였던 거니까.  



원래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는 얘들의 특징은 너무 무서운 나머지 타는 내내 눈을 뜰 생각을 아예 못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방향감각을 상실해 몸이 내동댕이쳐지는 느낌 때문에 더 무서워질 뿐이다. 그래서 꽉 붙들고 버티다 보니 몸은 더 경직된다. 운전을 해보면 잘 아는데,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할 때 방향에 따라 몸을 조금씩 틀면 더 편안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방향에 맞춰 오히려 몸을 조금 이완시키면 훨씬 쉬어진다.



물론 처음부터 빌런 드라켄으로 직진하진 못했다. 초심자 레벨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갔다. 나의 조력자이나 멘토인 남편은 우선 나에게 ‘어린이 바이킹’에서 무중력 상태를 가볍게 즐기게 해줬다. 그 다음 어린이들이 타는 ‘비룡열차’로 옮겨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을 몸으로 익히게 해줬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중급코스인 ‘발키리’에 도전했다. 이때 무서움이 엄습해 왔다. 아, 역시 난 안 되는구나, 이대로 나의 도전은 실패인가 싶은 순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지금 생각해보면 롤러코스터 신이 도운것 같다) 잠깐 실눈을 떴는데, 그 순간 철로가 오른쪽으로 휘어진다는 걸 알아챘다. 엇,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좀 들고 몸에 힘을 빼고 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랬더니 속도감이 그대로 몸을 통과하면서 짜릿한 흥분감이 올라왔다. 이런 게 스릴감인가. 그때부터 나는 계속 눈을 뜨고 발키리를 운전한다는 기분으로 탔다. 



아무리 깨달음을 얻어다 해도 '드라켄'으로 가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위풍당당한 위용에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일어났다. 벤치에 앉아 90도로 떨어지는 기계를 한폭의 풍경화처럼 보면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짓을 하나 싶었지만, 이런 현타 또한 하나의 통과의례이리라.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심기일전하고 나아갈 수밖에. 원래 대기 시간이 기본 1시간이라는데 하필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서 줄행랑 칠 기회도 없이 바로 탑승. 날씨도 좋았다. 추락을 즐기기 딱 좋은 날씨가 이런걸까. 눈을 뜨자, 눈을 뜨자, 앞을 봐야 한다, 계속 되뇌었는데 솔직히 수직 다이빙하는 순간에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내 몸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중 분해돼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무아(無我). 나는 없어졌다. 그리고 눈을 뜨자 다시 ‘나’로 돌아왔다. 와, 이거야 말로 무아와 해탈의 경지 아닌가. 눈을 뜨고 이 미친 속도와 나는 분별없이 한몸이 됐다. 물아일체를 깨달은 나는 다음 롤러코스터인 '파에톤'을 웃으면서 즐길 수 있었다. 내 옆에서 계속 엄마를 울부짖으며 번민하는 이름모를 중생을 가엽게 여기며.



40살의 수학여행이라고 이름 붙여보고 싶다.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성지인 경주에서 롤러코스터 잘 타는 법을 깨달았으니 참배움이 있는 여행 아닌가. 어떤 배움이 남았는가. 언젠가 인생의 추락을 맞볼 때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든 직시(直視)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든지, 두려움에 맞서는 방법은 눈을 뜨고 정면승부해야 한다든지, 그런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 같은 배움은 아니었다. 늦었지만 이제야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타는 법을 알게 돼서 신난다는 것. 그러니까 눈을 제대로 뜨면 삶이 훨씬 재밌다는 걸 배웠을 뿐이다.


커버이미지 : 위키백과 드라켄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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