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딸을 통한 치유 일기
공부할 것은 것이 많은 나를 위해 남편이 아이와 함께 집을 비운 사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슨 딴짓거리 할 만한 게 없나 기웃대다가 유튜브를 켰다. 나태주 시인의 딸이 유퀴즈에 나왔던 방송클립을 클릭한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해줄 것을 해주는 최소한의 아버지이자 본인과의 약속을 잘 지켜주는 아버지였고
태어난 이후 내내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게 해 준 아버지라고 묘사하였다. 흐릿한 마음으로 두 분의 대화를
따라가다가, 나의 남편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참으로 있는 아버지구나, 새삼 깨닫는다.
아버지가 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의 딸로 태어난 내가, 아버지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는 한 남자 어른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좋은 아버지란 실제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그의
사랑을 지극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치유받고 있다.
부모 없이 태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인데, 아버지의 자격성을 가차 없이 운운하는 모습이 가당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20여 년을 함께 산 아버지와 헤어진 이후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떠올려 봤을 때 생부라는 사실 이외에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는다면, 수십 년이 지나 내가 부모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라면, 나는 감히 내 아버지에 대해 그러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딸로서의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장면은 경찰이 왔던 그날이 아닐까 싶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손찌검 비슷한 것이 날아오기 직전에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남동생은 자신의 아버지의 목과 어깨를 자신의 손으로 제압해야만 했다. 그 장면보다도, 누나 빨리 경찰 불러, 했던, 동생의 침착하지만 다급했던 외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얼얼하게 남아 있다. 너는 치유되었니, 동생아, 그동안 한 번도 묻지 못한 그 이야기를 언젠가 하게 될 날이 오겠지. 돌이켜 보니 경찰이 오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동생은 꿈쩍도 못하고 그 자세로 그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공포와 절망감과 두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게 참 죄스럽고 지금도 누나가 더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 주는 동생에게 미안하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무식했고 무지했고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제 그런 상황이 오면 절대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이 무시할 수 없도록 대응할 관록이 생겼는데, 더불어 든든한 우리 편들도 생겼고 말이야. 그래, 우리를 지켜 내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우리 둘 모두에게.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의 딸로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의 무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아버지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아껴주지 않는다. 무능력한 가장 덕택에 경제적으로 신세를 많이 진 친척들을 만나는 명절이 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저절로 사촌들에게 수그리게 된다. 사촌들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가난한 사촌인 나를 악의 없이 무시한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도 내 부모는 그 발밑에도 못 미치는 다른 아이의 작은 성취를 추켜 세워 주어야만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자기 연민이나 슬픈 감정이 들지 않는 이유는 나는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라는 사실과 동시에, 내 딸은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불행에서 빠져나왔으며 앞으로도 들어가서 허우적 댈 일이 없고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도 아픈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가진 누군가에게는 당연할지도 모르는 우리 가족 주변을 감도는 따뜻한 공기에 매일 감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