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인 사람이 아침형 인간인 척하기란
오늘의 선곡: 언니네이발관 - 아름다운 것
방전이 되어 버렸다. 몇 주 내내 주말에 제대로 낮잠도 못 자고, 야행성으로 살아온 게 벌써 2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갑작스레 1교시가 많아져서 잠은 늦게 자면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려니까 힘들다. 힘들다는 말보다는 힘이 없다는 말이 가깝겠다.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저 누워서 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보내고, 틈만 나면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TV 보고 영화 보고 과자 먹고 뭐 그렇게 보내는 그런 아주 게으른 삶. 사실 힘이 없고 지치는 기분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낄 때면, 그래도 내가 조금은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있었고, 나는 그런 날을 기어다니고 싶은 날이라고 표현했었지. 모두가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때에, 특별한 이유 없이 힘들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때였으니까. 그냥 힘들어 죽겠고 어디엔가 기대고 싶고 그랬지만 말할 수 없었던 나에게, 기어다니고 싶다는 웃음 섞인 말이 최선이었다. 그 기분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도 비슷하게 찾아온다. 훨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딱히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자신에게도 사실 할 자신이 없다. 그다지 내가 힘들 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내 탓을 하는 거다. 왜 이 정도에 지쳐 버렸나. 그리고 지치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든다. 너무너무 쉬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을 쌓아 두고 그렇게 게을러져도 되는 거냐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은 몸이 힘들고 아무 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1년 반쯤의 나는 맘껏 게으를 수 있었는데.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했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는데. 후에 그 게을렀던 순간을 후회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게으르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그런 글을 썼었지. 후회하지 않는다. 내 성격상 아마 게으른 것을 그렇게 마음껏 즐길 순간들은 당분간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으로 남을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 시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임을 알았고,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을 행복이라고 자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너무도 잘 들어 맞아서, 겨우 1년 반이 지났을 뿐이지만 나는 죄책감 속에 살아 있다.
치열하지 않은 세상으로 가면 조금 덜어 놓을 수 있는 걸까. 억지로 덜어 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당연히 찾아올 만한 마음이라 생각하고, 그게 내 자신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괴롭히고 적당히 불편한 정도니까, 그 정도는 오히려 나를 적당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동력이 되어 주니까. 그리고 이 정도의 죄책감과 함께 살아온 것은 오래된 일이니까. 그다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살면서도 주말 정도는 원없이 쉬었고,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은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주었으니까.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정도의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 더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면서 오버페이스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더 풀어지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그렇게 살면서 나쁘지 않게 살았으니까, 그래서 또 그렇게 살고 있는데 순간순간 너무 힘이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온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포기하지 못할 사람인 것도 알고. 하고 싶어서 한 일인데 꼭 그 일이 몰아치면 그 일이 어느 순간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 번쯤은 그 어떤 것에 대한 부담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시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시기에마저 주변 사람들은 쉬면서 뭐하고 있냐고 물어 오겠지. 나는 쉬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대답하겠지만 그 시간에 시험을 준비하고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을 보면 또 이렇게 마냥 쉬어도 되나, 내 인생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모은다는 명목 아래에 이렇게 내가 쉬어가도 되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겠지. 그렇지만 불안하다고 말하는 그 시기에도 나는 고작 xx살밖에 되어 있지 않을 거야.
누군가와 내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잘 살아왔는데, 그냥 사람들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다 보니 가끔은 비교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냐고, 수시로 묻게 된다. 사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냐고 물을 생각도 없과, 그냥 해야 하는 일들에서 풀려 나서 마음껏 놀고 싶은 마음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행복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니까. 오래오래 걷고, 오래오래 잠을 자고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고 뭐 그런 소소한 일상들. 그 어떤 것에 대한 부담감도 없이,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데드라인 같은 것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그런 상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면서 행복하지 않다면야 마음이 불안하겠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지금 당장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해도 불안한 마음이야 없다. 더군다나 이번 주만 끝내 놓으면 다음 주에 마음껏 쉴 수 있을 테니까. 연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