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곡: https://www.youtube.com/watch?v=Cx4Y68LO_t8
열심히 계산기 두드리며 문제를 신나게 풀다가 답이 맞지 않는 문제들이 연달아 나왔고, 급 짜증이 밀려와 이불 속으로 피신을 했다. 한참을 이불 속에서 영상을 보고 나와서 다시 책상 앞에 앉으려니, 도대체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험 기간마다 늘 생각했다. 누가 대학 가면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다고 했나. 계산기 두드리며 문제 푸는 건 내가 꿈꿨던 미래에는 전혀 없었는데.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문제를 풀다 보면 이걸 왜 하고 있나 싶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서, 그걸 위해서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아니었나. 내가 가 본 길을 제외하고 다른 길로는 가 보지 않았으니, 내가 포기한 것들이 얼마나 반짝거리는 것들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재미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냐 하는 일상 속에서도 내 자신은 행복하다 느꼈으니까, 그렇게 지나온 학창 시절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건 없다. 그래서 이걸 하려고 내가 열심히 살았나,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 당시에는 '하고 싶은 것'이 일종의 빛이었고 나를 지탱해 주는 큰 힘이었는데, 하고 싶은 것이 명확히 존재했기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인데, 막상 그걸 못하고 있구나, 이런 기분이랄까. 이러다가도 나중에 써 먹을 만한 네임 밸류를 가지면, 그래도 그러길 잘했지 하려나. 과연 써 먹을 만한 건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해서 써 먹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도 모르겠고. 이건 자괴감이라기보다는 그냥 순수한 고민에 가깝다.
안정기이긴 한가 보다. 뭐 이런 생각을 해도 우울한 게 아니고, 순수한 궁금증의 느낌으로 다가오다니. 듣고 싶은 수업들을 우겨 넣었던 이번 학기는 그 어떤 학기보다 만족스러웠기에, 조금 더 하고 싶은 일들이 의무가 되는 전공을 택했더라면 조금은 더 즐겁고 열과 성을 다하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지쳐 버리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느리게 가더라도 지치지 않으려고 애써 왔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빠르게 달리다가, 지쳐서 주저 앉아 버리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다. 그래도 지쳤을 때 지친 것을 인정하고 쉬어가기를 택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쳐서 주저 앉는 게 두려워 아예 지치지 않을 만한 속도로 살아가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요즘은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지쳐도 괜찮고,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게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괜찮지 않은 상태가 오는 게 너무 두렵다. 그 괜찮지 않은 상태가 오는 건 별스러운 일이 아니고, 그렇기에 괜찮지 않은 상태가 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내게 바닥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이고 뭐고 다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는 것은 너무 끔찍하니까.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야 다시 행복해질지 감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고 싶다고, 굳이 '오래'에 집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도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거기에 남아 있었으니까. 좋아하는 것을 잃고 싶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그냥 다른 이유 없이 멈추는 것 자체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획해 두었다가 쉬어가는 것과, 어쩔 수 없이 고장나서 쉬어가는 것은 명백히 다르니까.
늘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 생각하면서, 늘 생각하다 보면 이것도 강박인가 싶은 게 너무나 많다. 그냥 어디인가에나 잘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많은 프레임 속에 나를 잘도 끼워 맞췄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 그렇게 살면 안 될 건 또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싶다. 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 왔다. 그래서 양쪽 다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어 왔고, 그 속에서 만족하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그건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올인하지 못했다는 말도 되니까, 그렇게 계속 살아가도 되나 싶기도 했다. 10대 때의 나는, 입시만 지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며 살 줄 알았으니까. 고작 몇 년 전일 뿐인데, 그때의 나는 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을, 이상인지 몰랐던 걸까. 이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 로망이나 기대 같은 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잘한 로망이 많은 것 대신, 이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고 꿈꾸고 동경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이상들은 황당무계한, 아예 거리가 먼 이상은 아니었고, 이제는 동경 대상도 아닐 만큼 가까워져 있다. 그렇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자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 보이고, 과거에 바라봤던 것처럼 마냥 멋있다든지 하고 싶다든지, 지금 당장 뛰어들고 싶다 이런 맹목적인 열정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문제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면서도, 동경하던 마음은 여전히 남아 하고 싶다는 열망은 완전히 놓지 못하는 그런 상태다. 어떻게든 흘러 가겠지, 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되었든 내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만큼으로 인생을 꾸려 왔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괜찮게 살아온 게 아닐까 싶고. 그 와중에 옛날 노래가 좋아서 감탄하는 중이다. 옛날 노래의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다. 다락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있는 기분. 밖은 추운데 안은 따뜻한, 난로 앞에서 손을 녹이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