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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Dec 15. 2017

강다니엘 통해 인류애 회복하기

강다니엘하는 삶 최고네요 

                                                                                                                                                                                                                                                                                                                                                           오늘의 선곡: 워너원 - Energetic (강다니엘 직캠 버전)                                                                                  

출처:  LIFTOFF films

                                                                                                                                                                                    (영상 직캠은 여기에서 가져 왔답니다)                   

Twitter: https://twitter.com/liftoff_films
Website: http://liftoff-films.com


 1.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고, 좋아하는 것이 일상에 주는 힘은 활기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고, 좋아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내 자신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통해 인류애를 회복할 수 있을 줄이야. 좋아하는 게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실제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행복 지수가 급등하면서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 속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연예인을 통해 인류애를 회복하는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냥 웃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사랑스럽고,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요즘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애정을 쏟은 경험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내 자신에 대한 애정도, 사람에 대한 애정도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였는데, 그 웃음을 보면 세상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누구든 좋아해 줄 수 있을 것 같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상태로 돌아가게끔 만든다. 비록 실제의 인연이 아니다 보니 일시적인 효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빠지게 된 이후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덕질을 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렇게 대세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이렇게 조금 좋아해서는 좋아한다고 말도 못 꺼낼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시각을 또 열어주는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 싶다는 프레임에 굳이 나를 가두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를 통해 다양한 시각,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었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써 왔던가. 그 말은 늘 진심이긴 했지만, 모든 새로운 경험에서 새로운 시선과 의미를 찾아 내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무엇인가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강박 관념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강박 관념도 놓아 주어도 괜찮다고도 말해주고 싶었고. 사실 가장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 있는 그대로 괜찮아, 더 나아지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실 그런 말을 하며 내 자신을 다독일 자신은 없었다. 진심을 온전히 담지 않은 말, 내 자신이 이미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말을 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2.  원래 뭐든지 뒤늦게 빠지는 편이다. 드라마도 제때 본방사수하는 건 거의 없고, 나중에 유명한 드라마 보다가 뒤늦게 빠지는 편이다. 영화도 천만영화는 본 게 많지 않다. 그닥  그런 느낌의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때맞춰 영화관을 잘 안 가게 되어서이기도 하고. 음악도 차트에 있는 음악보다는 인디음악을 주로 듣다 보니까 딱히 최신곡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인디 음악도 최신곡보다는 그냥 내가 듣고 싶은 앨범을 듣는 편이다. 그래서 영화+드라마+음악 모두 현재 인기 많은 건 그닥 관심이 없다가, 나중에 혼자 푹 빠져서 뒤늦게 열광한다. 뭐 남들은 열광할 시기가 다 지나서 동네방네 티내면서 열광하기는 민망하고 그래서 혼자 조용히 열광한다. 왜 그 당시 인기가 많을 때에는 내가 그 매력을 몰랐을까 하면서. 인기가 많으니까 분명 접할 기회는 많았다. 물론 나오자마자 한번에 빠져드는 음악이나 영화나 드라마도 있지만, 뒤늦게 빠지는 패턴은 이런 식이다. 주변에 어떤 음악이 좋다고 난리법석, 글을 올리면 요즘 이 음악이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또 관심을 갖고 들어 본다. 그런데 막상 들어 보니까 내 스타일이 아님 - 도대체 이런 음악을 왜 좋다고 난리인 거지 - 하고 방치하고 있다가 들을 음악이 없어서 다시 들어볼까 하고 검색해 봄 - 들었는데 너무 좋다.. 헤어나올 수 없어.. - 왜 그때의 나는 이렇게 좋은 것을 좋은지 몰랐을까 -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강다니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프듀에서 사람들이 열광하고 1등의 자리가 확실해졌을 때 도대체 강다니엘이 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영업을 해도 그닥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었기에, 도대체 왜 강다니엘이 1등일까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접한 건 영상도 아니었고 그냥 사진 몇 장뿐이었기에 사진만 봐서는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할 정도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TV를 켰더니 워너원이 나오고 있더라. (한창 집에서 TV를 열심히 보던 여름방학 시즌에 워너원이 정말 많은 예능에 출연했다. TV 틀면 워너원 나왔음) 사실 예능을 보면서도 '아 너무 재밌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능 스타일은 나 혼자 산다처럼 한 사람에 집중해 주거나/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리얼리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능을 할 때 '아, 나는 웃겨야 해' 하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엉뚱하고 조금은 이상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실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였을 때, 어느 구석이든 매력적인 구석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방송을 몰라서 억지로 웃기려는 느낌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보여 주는 사람 (예를 들면 신하균...) 혹은 방송을 오래 해서 이제 방송에 익숙해져서 자기 자신을 보여줄 만한 여유가 생긴 사람. 이런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면 반하게 된다. 


 어쨌든 다시 워너원 이야기로 돌아와서, 처음 봤던 워너원이 나온 예능은 해피투게더였다. 해투에서는 일단 워너원의 인원 자체가 많다 보니까 게스트가 많아서 돌아가면서 비슷하게 토크를 분배해야 해,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워너원은 신인이다 보니까 낯선 예능도 떨리고 대선배님들도 어려운 게 당연했겠지. 그래서 자연스러움보다는 소개며 개인기며 뭔가를 엄청 준비해서 온 느낌이었다. 그 신인 특유의 느낌. 신인 아이돌들을 보면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상냥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보컬/랩/댄스 담당 이런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포지션 말고도 캐릭터 부분에 있어서도 포지션을 나눠야 하는 것 같았다. 어느 팀에나 개그/예능 담당이 한두 명쯤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유형화된 캐릭터에 맞춰서 개인기를 정하고, 그렇게 웃기지도 않은데 모든 순간에 웃으면서 쉴새없이 리액션을 해야 하고. 그냥 그렇게 긴장 속에서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 느낌? 사실 그런 신인 특유의 느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라서 신인인 아이돌은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참 웃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해투를 보고 나서 유튜브에 들어가서 해투 컷을 얼마나 돌려 봤는지. 본 건데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그냥 계속 그렇게 보다 보니까 워너원 예능을 다 챙겨 보고 싶고. 보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강다니엘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다니엘이 나온 영상을 주구장창 시청하게 된 것이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열심히 다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강다니엘을 좋아하게 되면서 큰일났다 싶었던 게 지금까지 이상형의 조건에 단 한 번도 피지컬의 조건이 들어 갔던 적이 없는데 강다니엘 보면서 저런 피지컬의 남자를 한번만 만나 봤으면, 하는 상상을 하게 되어서였다. 사실 이렇게 대세인 사람, 나 말고도 모두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면 그만큼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정도는 좋아함의 축에도 못 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겨우 이 정도로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을 해도 되나 싶은.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데 열등감을 느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대세를 좋아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어쩌면 그냥 내 취향이 대세 쪽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앨범에서도 좋아하는 노래는 타이틀곡보다는 수록곡인 경우가 많았고, 대세인 것들은 별로 마음이 가지 않거나 마음이 가도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아니었던 편이었다. 신인 안 좋아해, 아이돌 안 좋아해, 피지컬은 내게 있어 그렇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야, 대세 안 좋아해 등등 스스로 생각했던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분류 조건들을 강다니엘이 모두 깨 버린 것이다. 그냥 강다니엘이니까 좋았다. 강다니엘의 이런 모습이니까 좋았던 거지, 이런 모습을 가진 강다니엘이라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야.  
 
 어쨌든 강다니엘 덕분에 인류애 회복하는 중이다. 강다니엘 웃는 것만 보면 세상에 대한 애정이 샘솟거든. 주기적으로 내 자신에 대한 애정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세상 자체에 대한 애정도 떨어지는 기간이 있는데 사실 지금이 그랬다.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이 시들시들하고, 그런 시기.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지 않은. 감정이 바닥나 버린 그런 기간. 누군가를 위해 웃어 주고, 공감해 주고 그런 것들에 대한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큰 시기. 에너지 소모가 크기보다는,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가 있지 않으니 그만큼의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웃어 주는 게 힘이 든다는 것을, 그 순간 자체에 실감하는 그런 시기. 그런 와중에 강다니엘을 보면 세상에 대한 애정이 샘솟으면서 사람들을 맘껏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점에 있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인류애를 회복한다는 감정은 처음 느껴 봐서 고마웠다. 인류애를 회복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야, 싶었고 좋아하는 것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고. 
 
 인류애 회복이라는 말이 거창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심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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