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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Feb 24. 2018

출퇴근길은 통학러도 춤추게 한다

절로 몸이 들썩이는 신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

서울 사람 하고 싶다..


 아직 개강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통학러의 삶을 살고 있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지하철을 또 타야 하는 그런 삶. 약속 시간 한 시간 반 전에 출발해야 정시에 도착할 수 있는, 한 시간 전에 출발하면 100% 지각을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삶. 그것도 출퇴근 시간에 딱 맞추어 왔다갔다 하다 보니, 차도 밀리고 사람도 밀린다.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는 방금 지나갔고, 한참 기다려서 탄 버스는 도통 굴러가지를 않고, 원래 타려고 생각했던 지하철은 1분 차이로 놓치는데 다음 지하철은 꼭 연착되고, 가뜩이나 늦었는데 기껏 도착한 환승역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음 차를 타야 하고. 

 매일 같이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는 게 게임 퀘스트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게임을 못해서 게임을 싫어하게 된 사람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기'라는 퀘스트에도 실패할 때가 많았다! 좀 일찍 일어나서 빨리 준비하고 여유 있게 나오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아침에 토스트 먹지 말고 그냥 나올 걸, 패션쇼할 것도 아닌데 뭐 입을지는 왜 그렇게 고민했지? 해 봤자 의미 없는 후회들을 가득 안고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아무리 지하철 안에서 종종거려 봤자 지하철이 KTX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후회해 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조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그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지워보고자 신나고 혼을 쏙 빼놓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비록 현실은 옴싹달싹하지 못한 채 손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만원 지하철 안이라 할지라도, 듣기만 하면 절로 몸이 들썩여지는 음악들을 듣는다. 90퍼센트 정도는 우울하고 잔잔한 음악으로 채워져 있던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이렇게 신나는 음악들로 가득 차다니! 역시 출퇴근길 통학의 힘은 대단해! 그 대단함이 긍정적인 방향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신나는 음악으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가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반가웠다. 그래서 별 건 아니지만 함께 듣고 싶었다. 출퇴근길의 괴로움을 아는 당신을 위해, 지각할까 혼자 마음 졸이는 당신을 위해.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캐러밴


1집 The Golden Age                 

아티스트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발매일  2013.02.20.                                                 



 댄서를 정식 멤버로 포함하고 있는 특이한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댄스 플로어를 지배하는 디스코의 제왕'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정도로, 춤을 빼 놓고는 술탄을 이야기할 수 없다. 나잠 수, JJ핫산, 김간지, 지, 홍기라는 예사롭지 않은 멤버 이름, 화려한 수트에 머리에 둘러싼 터번, 까만 선글라스라는 범상치 않은 차림새만 봐도 벌써 흥겨워지는 기분이다. 실제로 술탄 공연에서는 모든 관객들이 따라서 춤을 춘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그래서 흥겨운 노래를 듣고 싶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았던 음악이, 바로 술탄이었다. 흥겨운 것으로 따지자면 탱탱볼이 압권이라고 생각했지만(한 번 듣고 나면 탱탱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게 되었던 음악은 캐러밴이었다.


그저 사막을 지나 간다 덥다 사랑찾아 끝없이 간다 꽤 덥다
사막이 끝이 나면 올까 내사랑 기대조차 버겁다 아직도 뜨겁다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걷다보면 끝없는 모래밭 언젠가 사라질까
희망은 신기루로 끝나버리고

무수한 별자릴 의지해 걷다보면 푸른 오아시스엔 내 사랑 있을까
사막이 끝이 나고 초원이 나오면 있을까
단 한톨 희망도 버리지 말아야지 그리움을 떨칠 곳을 찾아 걷는다

-술탄오브더디스코, '캐러밴' 中


'다'로 운율을 맞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를 흥얼거리다 보면, 의외로 묵직한 사랑 이야기가 보인다. 뜨겁고 메마른 사막에서 메마르지 않을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는, 출퇴근길의 우리와 정반대 같으면서도 닮아 있다. 마치 사막처럼 감성 따위는 메말라 버린 정신없는 출퇴근길, 캐러밴 대신 꽉 막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는 우리. 물론 우리의 여정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아니나, 흥겹게 술탄의 음악을 듣다 보면 꺼진 사랑의 불씨가 되살아 날지도 모른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라는 말도 있지 않나. 출퇴근길 캐러밴을 들으며, 꺼진 사랑의 불씨도 다시 보자. (아무말)


+ '캐러밴'이 취향인 분들을 위한 또 다른 추천곡: 의심스러워, 탱탱볼



마주볼필요없이 (Feat. 위댄스) - 전기성

주파수를 나에게                 

아티스트    전기성                                                 

발매일      2017.10.17.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출신의 조까를로스가 꾸린 3인조 밴드, 전기성. 4차 산업 혁명과 디스토피아를 언급하는 앨범 소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가사들( ex. 언제부터인가 머리 속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트랜지스터를 통하여 정보와 감정은 공유되고 - 주파수를 나에게 中), 세기말에 어울리는 감성이 녹아 있는 사운드가 결합된,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신선한 음악을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요 앨범에 하나씩 들어가는 전형적인 혼성 듀엣 곡을 만들고 싶어' 만들었다는 '마주볼필요없이'는 말이 필요 없이 신나는 곡이다. 디스토피아, SF영화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 앨범을 놓치질 말길. 새로운 장르의 음악,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한 독특한 음악을 들어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앨범. 

https://www.youtube.com/watch?v=RFivycFGve0

[official M/V] 전기성 - 사이코메트리-O  (2017년에 발매된 앨범이 맞나 싶은 뮤직비디오.)


+ '마주볼필요없이'가 취향인 분들을 위한 또 다른 추천곡: 사이코메트리-O, 다 떠난 자리의 우리



기억 안 나 - 장기하와 얼굴들

사람의 마음                 

아티스트    장기하와 얼굴들                                                 

발매일       2014.10.15.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독보적인 개성, '장얼'이 아니면 안 되는 대체 불가능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겠지만. 장대라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청취자로서 장대라의 로고송이 등장하고 장대라 청취자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가 담긴 3집을 사랑할 만도 했지만, 이상하게 가장 덜 사랑했던 앨범이 바로 3집, 사람의 마음이었다. 전체 재생을 눌러 놓고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다른 앨범들과 달리, 3집은 들어본 노래가 서너 곡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잘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야 다시 들어 봤는데, 이게 웬걸. 이렇게 좋을 수가!


https://www.youtube.com/watch?v=Bx3bWwpBBUg 

[EBS 스페이스 공감] 장기하와 얼굴들 - 기억 안 나


 장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밀당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조용히 부르다가 갑자기 소리를 확 지르질 않나. 한없이 느릿느릿 노래를 부르다가도 갑자기 랩을 하지를 않나, 어떻게 저런 표정으로 저런 춤을 출 수 있지, 싶게 웃음기 싹 뺀 무표정으로 정체불명의 춤을 추질 않나. 그걸로도 모자라 '기억 안 나'에서는 여성 파트까지 소화한다! 원래는 여자가수의 피쳐링을 염두에 두고 가성으로 가녹음을 했었는데, 결국 그 가녹음이 채택되었다고. '어젯밤이 지난 오늘 아침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너 같은 애들 많이 겪어 봐서 대충 어떤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이라고 말하는 사람 정말 딱 질색이지만,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기억 안 나'라고 노래하는 장기하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콩깍지가 씌인 걸까. 

+ '기억 안 나'가 취향인 분들을 위한 또 다른 추천곡: 나를 받아주오, 올 생각을 않네,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솔직히 말하자면, 신나는 음악 3일 듣고 4일 차부터는 다시 잔잔한 음악으로 갈아탔다. 그만큼 신나는 음악에는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중에서 취향에 맞는 곡을 한 곡이라도 발견했다면, 그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신나고 들썩거리는 기분이었다면, 덩달아 들썩거리고 신날 것 같다. 신나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한 수 가르쳐 주셔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하시길! 주말 최고! 늦잠 최고! 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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