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척 하며 제 갈 길을 가다가도, 그리운 나의 계절이 될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보를 들었다. 마지막 앨범이라고 했다. 마지막 앨범이라고 공지한 글을 접했을 때에는, 갑작스러웠지만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장기하와 얼굴들다운 엔딩 멘트 때문이었을까. 왜 마지막을 말하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그 이상으로 멋있기 어려운 마지막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을까. 그냥 슬프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마지막 앨범을 열심히 기다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만난 마지막 앨범은, 앞부분을 듣다가는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마지막 곡까지 다 듣고 나니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 인사를 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 마지막 공연을 너무나 보고 싶어지는 그런 앨범이었다. 이렇게 혼자 앨범을 듣는 것만으로 작별 인사를 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앨범이었다. 공연에 가서 직접 마지막 앨범을 듣고, 멤버들이랑도, 그리고 그 공연을 같이 보러온 사람들이랑도, 이 마지막에 대한 감정을 공유해야,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연결된 기분을 느껴야, 그제야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에 속 시원하게 안녕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앨범. 그렇지 않으면 오래오래 미련을 가지고, 구질구질하게 아쉬움을 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연은 이미 매진되었고 나는 아마 오래도록 구질구질하게 아쉬움을 품으면서 장얼을 기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나의 끝은 구질구질했다. 나는 누군가와 안녕을 말하는 데에 능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끝을 말했던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편이니까.
이번 앨범은 '혼자'를 말하는 곡들이 많았다. 혼자 남아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을 그리는 순간들을 말하는 곡들이 많았다. 장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담담하고 과장되지 않은 솔직한 가사들을 담담하게 부른다는 점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러한 장점이 극대화된 곡들이 많았다. 앨범 발매된 이후로 주구장창 들었던 '등산은 왜 할까', '아무도 필요 없다', '별거 아니라고'가 다 그런 느낌의 곡들이었다. 11월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추운 밤, 혼자 걸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 곡들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에겐 장얼이 마지막 앨범을 냈던 이 계절이, 혼자 이 길을 걸으면서 이 앨범을 들었던 계절이, 아마 그리운 나의 계절 중 하나가 되겠구나.
오롯하게 쓸쓸해서 아름다운 앨범이었다. 요즘의 나는 그다지 쓸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만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허전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말하면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렇다 해서 빈틈없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데, 돌아봤을 때에도 어떤 면에서 보나 딱히 부족한 것은 없는데, 그래도 마냥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자꾸만 드는 요즘이었다. 그냥 그런 와중에 듣는 장얼의 앨범은, 이런저런 과거의 순간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는데,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떠올랐던 과거의 순간 중 하나는, 장대라를 듣던 마지막 밤이었다. 아마 그 밤은 오래오래 들고 갈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립지만 희미해질 때마다 생생하게 되돌릴 수 있는 기록도 남아 있으니까. 그때의 마지막은 너무너무 아쉬웠고, 슬펐고, 붙잡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들을 직접 표현할 수 있었고, 그 감정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그 마지막을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마음을 벅차게 하는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 묘한 짜릿함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이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마지막 방송본을, 그 중에서도 내가 보냈던 문자를 읽어주는 순간을 다시 들으면, 다시금 그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마 공연에 가면 그 연결과 공유를 보다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겠지, 그리고 기억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푸른 새벽녘에 맨발로
비 오는 골목을 손 잡고 걸으며
너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지
다 별거 아니라고
아름다웠던 사람아
그리운 나의 계절아
- 장기하와 얼굴들, '별거 아니라고' 中
'계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문장들이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을방학 3집 '세 번째 계절'의 앨범 소개글 중의 일부.
2.
만남의 나이테를 세는 단위로 계절을 꼽는 것은 꽤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몇백일이니 몇 년이니 하지만, 날(日)은 너무 촘촘한 망이고 해(年)는 너무 무딘 칼입니다. '여섯 계절째인 남자친구가 있어.' 실생활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좀 떨어져 걷고 싶겠지만 글로 써놓고 보니 그럴싸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계절을 타니까요. 소매와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뀌는 파고를 몇 번이나 같이 넘을 수 있었는지, 사람 사이의 인연을 가늠하는데 썩 괜찮은 척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가을방학 '세 번째 계절' 앨범 소개 中
그리고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라고 노래하는 검정치마의 가사. 검정치마의 노래 중 한없이 달콤한 사랑을 말하는 가사들이 너무나 많지만, 검정치마만의 감성으로 말하는 사랑 노래들을 좋아하지만, 그 중 가장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사는 단연코 이 가사였다. 내 여름이라고 말하는 그 가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계절이라는 단어가 이유없이 좋은 맥락과 아마 비슷할 테다. 계절이라 부를 수 있는 대상을 갖는 것, 그 자체가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계절을 들으면 하나 더 추가되어 생각날 문장이 바로, '그리운 나의 계절아'라는 문장이 아닐까. 여름에는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몸을 움츠리게 되는 계절이 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아니라고'가 떠오르지 않을까.
계절은 매 해 돌아온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사람은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별로 없지만, 계절은 매 해 어떻게든 돌아온다. 어떤 해의 겨울은 유난히 더 춥고, 어떤 해의 여름은 유난히 더 덥지만, 그리고 어떤 해의 봄과 가을은 유난히 더 짧지만. 그런 식으로 계절도 변하는 건 맞지만,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어떤 계절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계절은 매 해 돌아온다. 변하긴 변하더라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계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절이라 불렀던 대상을 가졌던 사람은 그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그 대상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를 문득 떠올리는 일은 어떤 순간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문득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은 스스로에게 의미 있던 순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흘렀다 하더라도 생생할 때가 많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게 가끔은 밉고, 그때의 내 자신과 지금의 내 자신이 비교되어서 가끔은 기분이 묘하고, 그래도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그리워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가끔은 다행인 그런 순간들. 통째로 누군가가 계절이 되어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깊이 남을 감정을 느꼈기에 가능한 것일까. 얼마의 계절이 지나야, 그 계절이 돌아와도 그 계절의 주인이 떠오르지 않으려나.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들을 때에는 전자의 질문에 대해 생각했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아니라고'를 들으면서는 후자의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나는 장얼의 이번 앨범에게, '초겨울'이라는 일종의 계절을 통째로 내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계절에, '별거 아니라고'를 들으면서 지나간, 그리운 계절과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게 분명하다. 아마 담담해서 더 슬펐던, 이걸 읽으면서 슬프다고 말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그렇다면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나, 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던, '별거 아니라고'의 앨범 소개글도 떠오를 것 같다. 어이없게도 눈물이 났다고, 내가 내 노래를 듣고 울다니 우습군, 하면서도 울었다고 말하던 그 소개글. 이번 앨범의 소개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장대라를 들을 때 담담하게 위로를 건네던 목소리로 앨범을 소개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과하지도, 그렇다 해서 모자라지도 않은 위로들이 오갔던 장대라. 모든 라디오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장대라 가족들이라 불러주면서 무조건적으로 편을 들어주었던 순간들. 라디오들의 디제이들이 다 청취자 편을 들어주기는 하지만, 그 편애가 과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했다. 목소리 탓과 특유의 말투 탓도 있겠지만, 무심한 듯한데 무심하지 않은 위로들을 사랑했다.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무심하고, 그래서 따뜻했다. 모순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하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과하게 어떤 감정을 느끼라 하지 않아서, 과하다는 게 없어서, 그래서 그냥 좋았다. 콩깍지가 씌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인가의 끝을 접했을 때, 아쉬웠다고 절실하게 느꼈던 건 장대라가 전부다. 언니네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을 들을 때에도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마지막 앨범이 너무 좋아서 그 아쉬움이 배가 되긴 했지만, 오랜 시간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했다거나 공연을 봤던 건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은 자꾸만 과거의 기억을 강제 소환하는 앨범이라 들을 때마다 장얼도 나에게 그리운 대상 중 하나가 되겠구나, 언젠가 이 앨범을 들을 때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끝이 온 마음으로 아쉽다. 아직도 장대라의 마지막 방송에서, 엔딩곡을 틀어주면서 장대라 가족들에게 건넸던 마지막 멘트를 기억한다. (물론 그 마지막 멘트를 이후에도 수없이 돌려 들어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울먹거리며 건넸던 그 멘트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그 담담하면서도 무조건적인 편애가 그리워서 그 멘트를 얼마나 돌려 들었는지. 이번 앨범에도 그런 위로를 남겨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남들과 자꾸 내 자신을 비교하고, 자꾸만 작아지고 싶어지는 순간에 수없이 찾아볼 게 분명한 위로. 그 위로를 마지막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에 대한 글을 마치고 싶다.
1. 그건 니 생각이고
작년과 올해를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용을 가사로 썼다. 마치 남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투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멋모르고 밴드를 시작한 후 십 년이 지났다. 별의별 경험을 다 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날고 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고, 그건 경험이 쌓인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남들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씩씩한 척하며 제 갈길 가면 되는 거다.
- 장기하와 얼굴들, 'mono' 앨범 소개 中